《지구문학》2025년 가을호(통권 111호) 〈나의 문학 나의 삶〉코너
이 글은 《지구문학》2025년 가을호(통권 111호) 〈나의 문학 나의 삶〉코너에 실린 글임을 밝혀 둡니다. 원고 청탁을 받아 쓴 글인데, 써 놓고 보니 아직은 '젊은' 제가 마치 한참 원로 문인이 되어 쓴 듯한 느낌도듭니다.
사람은 어떤 분야의 재능을 타고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듯한데, 나 역시 이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날 적부터 책 좋아하는 습성, 그리고 책 잘 읽는 능력만큼은 타고났으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아주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어느 단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수업 중 에스키모의 얼음집이 이글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놀랐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백과사전에서 봤다고 답하던 게 더 놀랐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한 번씩 한다. 남들 같으면 지루해할, 책꽂이의 장식물을 벗어나기 힘들 법한 백과사전을 즐겨 읽는 친구가 있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실제로 나는 틈만 나면 백과사전을 비롯한 책을 틈만 나면 읽었고, 책장 속에 있는 내용을 통해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는 일을 통해 얻는 희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어릴 적부터 내가 손댄 책은 책등이 남아나는 일이 없었고, 내가 자주 보는 책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테이프로 책등과 속표지를 덧대는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모님은 ‘사내아이’가 너무 책만 본다며 걱정까지 할 정도였지만, 독서만큼 즐겁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그런 걱정이 내 독서열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독서를 즐기다 보니 자연히 글쓰기에도 관심을 가졌고, 초등학교 1~2학년 무렵부터 글쓰기나 백일장 등의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모두를 놀라게 했던 엄청난 독서량과 다독하는 습관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의 나는 백일장이나 글쓰기 대회에서 상장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학급에서 하는 글짓기 활동에서조차 특별한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글쓰기에 분명 열정과 관심이 컸는데, 이른바 ‘늦게 개화하는 재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에 그러한 재능을 키울 기회를 제대로 찾지 못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 적어도 문학적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고등학생 시절까지의 나는 특별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고등학생 시절 몇몇 친구들로부터 내가 글을 쓰는 능력이 경이적일 정도로 빠르다는 찬사를 받은 적이 있었고, 대입 논술 첨삭지도에서 좋은 평가도 여러 번 받았지만, 이 역시 적어도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는 활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나 독서량, 또는 지적 수준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로, 나는 나 자신이 문학적 글쓰기에 큰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적어도 고등학생 시절 내지는 대학교 1~2학년 무렵까지는 말이다. 문학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지만, 문학적 글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 무렵까지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이었다.
문학적이냐의 여부를 막론하고,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계기는 대학 진학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과 달리, 대학에서의 수업은 글쓰기 능력을 많이 요구했다. 암기식 수업, 사지선다형 시험을 싫어하다 못해 질색했을 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학자, 연구자가 된다는 목표가 강했던 나는, 대학에 진학해서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열심히 학업에 임했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글쓰기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시험은 물론, 보고서와 같은 과제물 역시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졌으니까. 지금부터 최고가 되지 못하면 훌륭한 학자의 바탕을 마련하지 못하리라는 일종의 위기의식 비슷한 것도 있어서인지, 대학 시절에 글쓰기 위주의 공부에 제대로 몰입한 끝에 글쓰기 능력도 눈에 띄게 가다듬어져 갔다. 내 글쓰기 능력을 칭찬하는 교수님들도 여럿 계셨고, 졸업한 뒤 언젠가는 어느 선배가 대학원 수업 도중 학부생 과제물을 평가하는데 글의 수준이 눈에 띄게 돋보이는 학생이 하나 있어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더니 그게 나였다는 이야기도 졸업한 뒤에 들을 수 있었다. 학업에 제대로 정진한 덕택에 상까지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의 나는, ‘문학’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글쓰기에는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원 석사과정 공부를 병행하던 나는, 교단에 서고 나서 1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 육군학사장교로 입대했다. 초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휴직‧휴학한 상태에서, 총 3년 4개월을 이어 갔던 군 복무였다. 장교 임관 뒤, 경기도 양주시의 어느 군부대에서 포병 장교로 복무했었다. 최전방이 아닌 덕분도 있었지만, 주말이면 인근 의정부시의 도서관에 와서 전공과 외국어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도 틈만 나면 전공 서적 탐독과 영어, 일본어 학습에 공을 들였다. 세계적인 학자가 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가운데 맺어진 어떤 만남이, 나의 삶을 또다시 바꾸기에 이르렀다. 의정부에서 활동하던 문인 김원기 선생님(전 경기도의회 도의원(3선, 도의회 부의장 역임))과의 만남이었다. 문인 활동을 하시던 김원기 선생님께 나는 문학적 글쓰기에 뜻이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내 문학적 소질을 알아보신 김원기 선생님 덕분에 나는 문학적 글쓰기를 배우며 2006년 계간 《지구문학》 여름호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할 수 있었다. 흔히 하는 말로 ‘군대 가서 인간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군대 가서 ‘문인이 된’ 셈이었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문인이 되는 데는 어릴 적부터 관심은 많았지만 그쪽의 소질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꿈을 군대 와서 맺은 소중한 인연 덕분에 이룬 셈이었다.
흔치 않은 20대 문인이어서였는지 당시 《지구문학》 발행인 겸 주간이셨던 김시원 선생님은 계속해서 수필 청탁을 해 주셨고, 심지어 등단 이듬해에 한국문인협회 정회원으로 추천을 해 주시기까지 하였다. 전역하고 초등학교에 복직한 뒤에도 한 해에 두세 편씩은 수필 작품을 발표했고, 2009년 여름호에 이달의 수필가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누렸다. 내친김에 2010년에는 《월간문학》 편집실에 수필을 투고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 그 해 12월호에 수필을 싣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뭣도 모르고 한 당돌한 행동이었는데, 결과가 좋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나의 문학 활동은, 내가 《월간문학》에 글을 실은 직후 잠정 중단되고 말았다. 사실 나는 애초에 역사학자나 국제정치 전문가가 되려는 마음을 가졌는데, 타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 터였다. 그리고 2010년 3월 초등학교를 휴직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1년쯤 지나면서부터, 교직을 계속할지 아니면 목표를 위해 교직을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크게 들었다. 결국 목표를 위해 교직을 그만둔다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내 의식 속에서 문학 활동은 멀어져 갔다. 2014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학교에 출강한 뒤에도, 문학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하느라 수필 쓰기는 뒷전으로 밀렸으니까.
하지만 그 정신없던 시절에도, 완전한 ‘절필’은 하지 않았다. 지구문학 측, 특히 김시원 선생님의 배려와 노고가 컸다. 잊을 만하면 원고 청탁을 강제하다시피 하시니, 결과적으로 한 해에 한 편씩은 수필을 발표할 수 있었다. 한번은 너무 정신이 없어 청탁받은 원고를 제때 안 보냈더니, 독촉 메시지가 왔다. 아주 반쯤 호통치는 느낌이다. 그 덕분에 나는 자칫 끊어질 뻔한 문학과의 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김시원 선생님의 그 같은 관심과 응원은, 나의 문학 생활을 강하게 지탱해준 큰 버팀목이 아니었나 싶다.
2018년 3월, 나는 강원도 강릉시에 소재한 가톨릭관동대학교에 부임했다. 비정년 트랙 교원이라 해서 이름만 교수일 뿐 교수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대우가 매우 열악-사실 우리나라 노동 관련 사안과 고등교육 분야의 크나큰 부조리, 문제점이기도 하다-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숨 돌리고 나니 그동안 겨우겨우 명맥만 이어 가던 문학에 대한 열의가 되살아났다. 그해 연말,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지구문학의 인터넷 카페에 그동안의 이야기와 근황을 전하고 문학 활동에 다시 정진하겠다는 글을 올렸더니, 많은 선생님이 반가이 맞이해 주셨다. 2019년 열린 지구문학 행사에도 참여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강릉 문인협회에도 정회원으로 가입해 지역 문단 활동도 시작했다.
강릉 문인협회에서 활동하다 보니, 영동수필문학회의 최현숙 회장님도 나를 수필문학회로 초대해 주셨다. 최현숙 회장님은 수시로 나의 작품을 주제로 한 손편지를 써 주셨고, 그중 한 장은 지금 내 연구실 테이블의 유리 밑에 잘 모셔져 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범유행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문학 활동은 이어 갔다. 그러면서 2021년에는 지구문학을 통해 내 첫 수필집인 《서해에서》를 출간하는 경사도 맞이할 수 있었다. 15년 동안 쓴 여러 수필 작품을 되돌아보니 감회가 남달랐고, 수필집을 내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문인, 수필가가 되었다는 정체성과 자부심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 2022년부터는 내 전공인 지리학을 살려 쓴 교양서의 집필과 출간을 이어 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독자가 나의 책을 좋게 보아 주어 꾸준히 책이 나가고 있으며, 우수 도서로 선정되거나 기대 이상으로 많이 팔린 책도 나왔다. 물론 이런 책들은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전공 서적과 교양서적의 중간쯤 되는 성격이 강하지만, 그렇게 여러 독자로부터 어쩌면 과분할지도 모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구문학》을 통해 문인이라는 꿈을 실현케 해 주신 김원기 선생님,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도 문학 창작의 끈을 놓지 않게끔 응원하고 도와주신 김시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지구문학 선생님들과의 소중한 인연도 자리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2023년 가을부터는 진주교육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국립대학교인 데다 ‘비정년 트랙’이라는 ‘족쇄’가 없어진 제대로 된 교수직이고, 내 전공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교육대학교다 보니 문학 활동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진주교육대학교에 부임함으로써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성취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힘든 삶에서 벗어나, 학술연구에 안정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그리고 노력과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삶을 비로소 누리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해 8월 초순 진주교육대학교로부터 교수초빙 최종 합격 메시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쁨에 겨웠던지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다 질러댄 끝에 결국 성대결절이 와서 며칠 고생했을 정도였다. 학자로서는 물론 문인으로서도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진주교육대학교라는 장소에는, 늘 감사함과 만족함이라는 마음을 투영하며 교직 생활을 해 오고 있다.
교육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이듬해 말부터는, 진주 문인협회에 정식으로 가입해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진주 문인협회 가입을 위해 강미나 사무국장을 만나 뵈니, 협회의 발전을 주도한 젊은 수필가를 극진히 환영하셨다. 문학 작품 발표회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많은 회원분이 반가이 맞이해 주셨고, 무엇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진주교육대학교 출신 문인들이 많아서 더한층 반갑고 감회도 깊었다. 우리 학교 부설초등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안정애 선생님은, 연구실에도 두어 번 들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가시기도 했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활동내용은 올해 상반기에 한 번 작품을 발표한 정도지만, 진주 문인협회를 통해 지역사회에서의 문학 창작 활동에도 더한층 많은 열정을 쏟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돌이켜 보면, 문단에 등단한 지 만 19년째다. 한 해만 더 채우면 20년이니, 문인, 문학가가 된 지도 적지만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타고난 다독하는 습관, 독서에 대한 흥미와 열정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글쓰기에 관심을 품어 왔고, 학자, 연구자가 된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 덕택에 어릴 적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던 글쓰기 능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을 만난 덕분에, 수필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삶을 시작하고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첫 수필집을 낸 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초가을의 일이다. 그 무렵부터 한동안 맥이 매우 약해져 있었던 문학 창작 활동을 다시금 본격적으로 해 왔으니, 그간 여러 문예지에 쓴 수필 작품이 제법 된다. 문인으로 사는 삶이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와 있으니, 이제는 그동안 발표한 여러 수필 작품을 모아 두 번째 수필집으로 거듭나게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