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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4. 2024

레드 콤플렉스 2화

어머니와 ‘누군가’ 사이(2)

창문 밖을 내다보니 어머니가 이제 막 운동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어머니의 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까지 닿는데 걸릴 시간은 대략 3분. 지금이라면 곧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교실을 나가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계단을 뛰었고, 금세 교사를 빠져나와 교문을 향해 달렸다. 그녀를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 왠지 오래전 어느 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이가 다시금 서먹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가 교문까지의 거리를 10미터 정도 남겨둔 곳에서, 비로소 그녀를 따라잡은 나는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보조를 맞춰 걸으며 말없이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 있니? 있으면 한 개비만 줘봐라.”


이제 막 교문을 나섰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교복 재킷 안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88라이트 비닐 팩 속에는 8개비의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녀의 입에 물려주고, 라이터를 꺼내기 위해 담뱃갑을 흔들었다. 그러나 삼백 원짜리 가스라이터는 부싯돌 부분이 포장지 어딘가에 걸린 것인지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답답한 듯 지켜보던 그녀가 내 손에서 담뱃갑을 가져갔다. 몇 번 담뱃갑을 흔든 그녀는 곧 능숙하게 라이터를 꺼냈다.


“교문 앞인데, 재수 없이 누가 보기라도 하면 너만 곤란해질 것 같아서. 짜증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근데 88이 뭐냐, 88이……. 요즘 오마샤리프도 있고, 디스도 있고, 약한 거 많은데 웬만하면 딴 걸로 바꿔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그녀가 긴 호흡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담배를 피운 탓에 조금 어지러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담배를 다시 문 것은 거의 2년 만이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녀는 담배를 끊었다. 대학가에 있는 한 술집의 주방 일을 하게 되면서였다. 일단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면 거의 퇴근 시간까지 주방을 나오기 힘들다보니 담배를 피우는 일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은 그녀는 그래도 많이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일이 워낙에 바빠 정신이 없어서 딱히 담배 생각날 일도 없다고 했다.


“전지훈련 얘기는 왜 안 했니?”


반 가까이 다 타들어가도록 모르고 떨어내지 못한 재가 시그러진 모양 그대로 툭,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말투가 떨어지는 담뱃재 덩어리만큼이나 툭, 무심하게, 그리고 둔탁하게 느껴졌다. 나도 무심히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그냥 길 끝을 바라봤다. 굳이 대답할 마음도 들지 않았지만, 뭐라 대답할 말도 없었다.

어머니가 걷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참 볕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초겨울로 접어든 계절은 참 좋아 보이는 볕마저도 차갑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와 닿는 볕이 부서지는데, 자꾸만 잘게 소름이 돋았다.


“그래, 너도 뭐 잘 알고 있겠지. 우리 형편에 운동을 계속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니?”


빛깔 좋은 볕이 차갑게 부서질 때마다 눈 밑이 움찔움찔 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참담했다. 축구를 그만둬야한다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한 축구인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가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말한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축구는 내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 인생은 곧 축구였고, 축구가 없는 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1998년이었다. 1998년 말에 축구를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어머니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 못지않게 더 이상 내가 축구를 할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어요, 어머니. 나는 그녀의 등을 보고 있고 그녀는 앞을 보고 있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마는, 나는 그런 식으로 밖에 동의를 표할 수 없었다. 말이라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잇기에는 우리의 눈과 눈 사이가 너무 멀었다. 지구 한 바퀴에서 겨우 2미터 모자랄 만큼의 어마어마한 거리.


“고맙다. 그럼 축구는 포기한 걸로 알게.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도 않고 내 동의의 표현을 알아들은 그녀가 용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이제 그녀에 대한, 아니, 이미 오래 전 ‘누군가’의 관계를 청산하고 가족으로서의 교감을 이어온 우리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상태였다. 그리고 또한 그런 이유로 그녀의 그 말에 서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고, 축구를 포기해야 하는 나만큼이나 애석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속상할 것이었다.


                                                                             ------------


국민학교 때까지, 나는 달리기를 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즈음이 되었을 때, 이미 내가 직접 볼 수 있는 사람 중에 나만큼 빠른 사람은 없었다. 물론 88올림픽이 열렸던 국민학교 1학년 때, 칼 루이스니, 벤 존슨이니 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TV속에서 한 호흡에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00m의 거리를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런 영상이야 카메라, 안테나, 브라운관, 이렇게 최소한 세 개의 차원을 건너온 말 그대로 환상 속의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달리기’를 한다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심지어 교내 대표선수였던 6학년 선배마저도 나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육상부를 시작했다. 종목은 100m. 육상부 선생님은 내 타고난 주력에 감탄했고, 감격했다. 내가 달리면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1년만 다듬으면 소년 체전 메달권도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지 1년도 못되어 서울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기고만장해졌다. 육상부 선생님도, 아버지도, 심지어 아직 ‘누군가로서의 관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어머니마저도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러나 끝내 전국제패의 꿈은 이룰 수 없었다. 육상부 선생님이 장담한 그 1년의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나는 축구부로 스카우트되었다.


너 정도의 주력이면 축구계에서도 꽤 통할 거다. 축구부 감독은 내 주력에 감탄은 할지언정 감격하지는 않았다. ‘메달권’이라는 표현 대신 ‘꽤 통할 실력’이라는 말로 내 주력을 평가했다. 육상부에 비하면 거의 홀대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결국 축구부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육상보다는 축구가 나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100m 달리기로 10등하는 사람보다는 축구로 100등 안에 드는 사람이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축구계에서도 꽤 통할 실력’이라면 국가대표 안에 드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거 아니니. 시 대회 우승에 감격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그렇게 말했다.


난 20명이 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중 몇 명의 이름은 알아도, 육상 100m 한국 1등하는 사람은 모른다. 장재근은 200m지, 아마. 아버지의 그 말은 나를 설득할만한 여지가 충분한 얘기였다. 그러나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어머니였다. 


아직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내 인생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내가 달리기로 시 대회 1등을 했을 때 그녀가 기뻐하던 모습도 낯설었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녀에게서 ‘부모’의 모습을 느꼈고, 그녀가 그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나를 설득한다면 믿어볼만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와 아버지, 어머니는 축구부 감독의 스카우트 제의를 쉽게 받아들였지만, 실제 입부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어려웠다. 육상부 선생님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고, 거기에 교감, 교무주임 선생님까지 가세했다. 사실 우리학교 축구부는 감독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유명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 선생님이 학생들을 총괄하는 육상부 쪽이 대외 성적은 더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100m 달리기는 개인종목이니 나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11명이나 같이 뛰는 축구부가 나 하나 때문에 수준이 급격히 올라갈 리도 없었다.


물론 내 의사만 확고하다면 그런 이들의 압박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설득 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달리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달리기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아무 복잡한 생각 없이, 심지어 호흡조차 한번으로 압축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 단순한 동작이, 나는 좋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때 달리기를 하며 느꼈던 기분보다 더 행복했던 기억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재능의 끝을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과연 칼 루이스와 약 먹은 벤 존슨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 호흡으로 잡았던 10초가량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갑자기 튀어나온 축구라는 녀석이 내 다리를 붙들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축구부 감독 앞이든, 육상부 선생님과 교장, 교감, 교무주임, 담임선생님 앞이든, 언제나 분명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리, 나는 어디를 불려가든 사람들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유부단한 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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