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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4. 2024

레드 콤플렉스 5화

오후 2시의 지하철(2)

그녀가 손을 들어 보였다.

까딱까딱. 이어서 그녀의 손가락이 두어 번 움직여 나를 불렀다.


거친 기계 소리와 함께 육중한 지하철이 멈추고, 여전히 빡빡한 움직임으로 문이 열리고 있었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해. 하얗게 지워진 머릿속에 가까스로 한 줄의 문장을 세웠다. 그 한 줄의 의지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내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내 발은 문이 아닌 그녀의 옆자리로 향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따스했다.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따스함은 더욱 짙어졌다.


“몇 학년?”


이어폰을 뽑으며 그녀가 물었다.


“고 2요.”

“난 3학년. 누나니까 말 놓는다?”


그녀가 웃어 보였다. 눈이 크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녀가 웃자 큰 눈망울에서 나오는 빛이 기분 좋은 느낌으로 흔들렸다.


“근데 2학년이 이 시간에 여기 왜 있어? 예체능?”


그녀가 다시 물었다. 별로 듣고 싶은 질문은 아니었다. 대답하고 싶은 질문도 아니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꺼림칙하기도 하던 차였다. 그녀는 이미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나를 알아본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그녀가 세계의 변두리를 증명하는 바람을 몰고 올까 두려웠다.


“축구를 했었어요.”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있는 그녀도 어쩌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녀의 눈빛을 감싼 이상한 기운에 긴장을 잃은 탓이었을까. 그녀의 손짓을 따라 그 자리에 왔던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담담한 말투로.


“했었다?”

“오늘 그만 뒀어요. 한 시간쯤 전에.”


‘그만 두다’라는 말 만큼은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듯 읊을 수 없었다. 버스에 오르던 어머니의 표정과 순식간에 사라진 도시의 볕과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지금의 내 신세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먼 곳을 보듯 반대편 창문을 바라봤다. 환상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다시 몸이 무거웠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왜 하필 이런 때? 요즘 축구 인기 좋잖아. 올해는 관중도 엄청 많이 온다던데?”


그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녀의 큰 눈은 여전히 빛을 내며 흔들렸지만, 조금 전처럼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해 보였다.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축구부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겨울 전지훈련 장소를 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어머니는 참석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로 어머니는 한 번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참석하지 못한 회의에서 다른 부원들의 부모들은 오키나와로 전지훈련 장소를 정했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회의가 끝나자마자 내게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전지훈련 비용이 얼마인지, 언제까지 내야하는지도 알려줬던 것 같다.


그러나 오키나와라는 지명을 들은 이후, 나는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키나와. 그것으로 충분했다. 멀고도 먼 오키나와. 그곳은 내게 가늠할 수 없이 멀고 낯선 곳이었으므로, 그와 관련해 곁가지로 뒤에 붙은 다른 이야기들은 더욱 멀고도 어려운 얘기들이었다.


다음 날인가, 혹은 다음 날의 다음 날인가 감독은 다시 나를 불렀다.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오키나와도 감당할 수 없는 선수를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여러 다른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다고 했다. 차마 냉정하지 못한 태도로 그는 내게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더 힘들었다. 그가 조금만 냉정했더라면, 잔인했더라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냉정하지 못한 태도는 무언가 여지를 남기는 것만 같아서, 나는 애처롭게도 침묵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적어도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 만큼은 사실이었다. 주전에서 밀린 건 오래된 일이었다. 2학년으로 접어드는 겨울 방학 때 전지훈련을 다녀온 이후니까 거의 1년이 다 되어갔다.


내 포지션은 라이트 윙.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단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내 자리의 포지션 네임마저 잊어버릴까 걱정스러울만큼 긴 시간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어떤 친구들은 실력만이라면 내가 주전 자리를 뺐길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감독의 의견은 달랐다. 나는 주력만 좋을 뿐,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했다. 발재간이 뛰어나지도 않고, 크로스도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1학년 때 팀의 코너킥을 전담하고, 굳이 페인팅을 쓰지 않고도 빠른 발로 서너 명의 수비수들을 뿌리치던 나였다. 그가 말하는 정교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동안 감독의 지적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 나는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그 시간동안 단 한 번도 내 주력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 주력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게다가 실력은 내가 낫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은 실력과 주전 자리 사이에 끼어든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대해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적어도 ‘정교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감독의 말이 더욱 근거 있게 느껴졌다.


정말 감독의 말대로, 나대신 라이트 윙을 차지한 동급생 녀석은 종종 나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감독이 말하는 화려한 발재주와 자로 잰 듯 정교한 크로스라는 것은 바로 그가 하는 드리블과 크로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나였으므로, 감독에게 침묵으로 밖에 떼를 쓸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힘주어 주장할 수가 없었다.


또 하루, 혹은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오후 훈련을 끝낸 감독은 다시 한 번 나를 불러냈다. 냉정하지 못한 태도만큼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주 간단한 얘기였다. 내일 어머니 오시라고 해라.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내 눈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던진 그 한 마디. 그는 비겁하게 나대신 어머니를 상대하려고 했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그는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결단을 미뤘다.


감독실을 나온 나는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똑똑똑, 혹은 똑똑, 똑똑똑, 똑똑, 똑똑똑, 똑똑.


미처 샤워기를 빠져나오지 못한 물기가 어딘가에서 차례로 바닥에 떨어졌다. 맨 구석의 샤워기 앞에 서서, 세게 찬 물을 틀었다. 뼛속까지 얼얼하도록 찬 물줄기가 정수리로, 어깨로, 등줄기로, 허벅지로, 종아리로 흘러내렸다. 추웠다.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느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수시로 온 몸을 떨며 소름을 털어내면서도 나는 찬 물줄기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똑똑, 똑똑똑, 똑똑똑, 똑똑, 똑…… 쏴아,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를 뚫고, 어디선가 처량하고 외로운 물방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똑똑, 똑똑똑, 똑똑똑, 똑똑, 똑…… 물방울 소리가 점점 커지며 차갑게 굳은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실력이 모자라서요.”


나는 대답했다.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일부분만 사실일 수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참과 거짓을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아리송한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그것이야말로 사실이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조금씩 사실과 거짓의 사이에 아리송하게 걸친 추가 '사실'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잠깐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근데 축구 좋아하나 봐요? 그런 얘기까지 알고?”


안정을 찾은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옆에 놓아둔 스포츠 신문을 접어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1면에는 K-리그의 관중 동원 신기록 기사와 함께 객석이 가득 찬 경기장 사진이 실려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프린트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관중석을 메우고 있었다. 축제였다. 폭죽도 터지지 않았고,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보이지도 않는 얼굴에서 화려한 축제의 흥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1998년의 축구는 이전의 축구와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특별했다. 뭐랄까, 단순히 양 팀 합쳐 22명의 선수들이 공을 차며 득점을 올리는 운동 경기가 아니라 거기에 몇 가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가 보태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1998년에는 월드컵이 있었다. 사람들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에 흥분했다.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이후 축구 관계자나 열성팬들 사이에서 간간이 회자되던 ‘붉은 악마’라는 말이 국가대표 팀의 팬클럽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흥분한 사람들은 새벽 시간에도 사상 최초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열심히 TV 중계를 지켜봤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1무 2패로 예선 탈락. 그 중에는 5:0이라는 치욕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스코어도 끼어있었다. 아시아 예선에서는 최종 예선에 이르기까지 적수가 없을 정도로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시아 최강의 팀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사람들은 실망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속았다는 기분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다시는 축구 따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월드컵이 끝나자 사람들이 K-리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10승을 넘기며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달래주고 있었다. 실망만 남기고 마무리된 월드컵 직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양말을 벗어던지며 추락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월드컵에서 실망감을 안겨준 축구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축구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의아했다. 야구도 아니고, 골프도 아니고, 왜 프로축구에 몰려들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은 4년 뒤의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었다. 월드컵이 끝났는데도 ‘붉은 악마’라는 이름이 TV광고와 관중석에 걸린 플랜카드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것이 그 증거였다. 그들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지 않았던 1994년의 월드컵을 반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끈질기게 붉은색에 집착했다. 더 이상 안이하게 세계와 대결할 수는 없었다. 2002년에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마저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K-리그가 강해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래서 그들은 축구장을 찾았다. 축구라면 이를 갈 것 같던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프로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8년의 축구가 특별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1998년의 축구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어쩌면 1998년의 축구의 전부일지도 모를 세 남자, 고종수, 이동국, 안정환. 월드컵에서 가장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젊은 피-고종수, 모두가 착잡한 기분으로 멍하니 김병지 뒤의 골네트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상대 골문으로 느닷없이 대포알과 같은 중거리 슛을 날렸던 한국 축구의 희미한 가능성-이동국, 그리고 수려한 외모와 천부적인 골 감각으로 많은 소녀들을 축구장으로 불러들인 테리우스-안정환.


월드컵에 대한 미련으로 K-리그를 찾은 사람들은 그 세 사람으로 인해 폭발했다. 폭발했고, 열광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애국자들이 화려한 스포츠 산업의 소비자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도 의아하고, 불안했던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축구의 미래는 밝구나. 야구가 아니라 축구를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런 때였다. 그런 때 나는 축구를 포기해야 했다. 모든 축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나는 축구부를 떠나고, 교실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 도시를 헤매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금 우울해졌다. 그만 둔 이유는 상관없었다. 가난과 미천한 실력, 어떤 것도 우울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저 축구를 그만 뒀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스포츠 신문의 사진 속에 점으로만 존재하는 관중들 속에서 누군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측은과 안타까움과 체념 같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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