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투어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중동 항공사들이다. 나는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갈 때 도하 환승 투어를 이용하기 위해 카타르 항공으로 티켓팅을 결정했다. 미리 신청하는 것이 아닌 카타르 공항 접수 데스크로 가서 등록하면 되고 최소 환승시간을 충족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기 줄이 엄청 길었다.
투어 시간이 되면 이제부터는 가이드만 쫓아다니면 된다. 단체로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 에어컨이 빵빵한 버스를 타고 도시를 쭉 둘러볼 수 있다. 카타라 문화마을, 더 펄, 수크 와키프 전통시장 등 주요 장소에서 스톱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편하게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투어를 마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라운지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 아제르바이잔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의외로 환승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중국 남방항공이었다. 두바이를 갈 당시 남방항공 티켓이 저렴해 구매를 했는데 대신 환승지인 광저우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 정도로 환승 시간이 길었다. 마침 무료 트랜짓 호텔 제공과 함께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고 해서 광저우에 하루 머물며 여행했다. 원래 중국은 별도의 비자가 필요한 곳이니 만큼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출발 전 미리 항공권 예약업체를 통해 신청했고 광저우 공항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입국심사 후 준비되어 있는 차량으로 호텔에 가면 된다. 호텔 시설은 좋으나 공항 근처에 위치해 시내까지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호텔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택시를 타고 나와 어렵지 않게 시내로 이동할 수 있었다. 광저우 타워도 보고 현지식도 먹으며 본의 아니게 중국 여행까지 잘 마쳤다.
크로아티아 여행 당시 대한항공 암스테르담 환승 노선을 선택했다. 자그레브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에 오전 도착, 암스테르담에서 밤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스케줄이라 하루 동안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수 있었다. 짐은 자그레브에서 모두 부친 상태이므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몸만 가볍게 나와 여행 후 다시 비행기를 타면 된다. 게다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시내의 센트럴 역까지 기차로 17분밖에 안 걸려서 이동시간 낭비도 없다. 시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이네켄 체험관까지 알차게 관람을 마쳤다.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들어 내리 잔 덕분에 장거리 비행을 편하게 한 것도 숨은 장점이다.
코스타리카 산호세에 갈 때에도 일부러 환승 대기시간이 가장 긴 델타 항공을 선택했다. 애틀랜타에 저녁에 도착해 다음날 저녁에 산호세로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애틀랜타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가 있고 인천에서 부쳤던 수하물을 애틀랜타에 도착해 찾아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의 환승만큼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환승시간이 23시간이라 시간이 넉넉해 일정 소화가 가능했다. 하루 동안 CNN 본사, 월드 오브 코카콜라, 마틴 루터 킹 생가까지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환승 여행을 계획했으나 실패한 경우도 있다. 확실히 환승시간이 짧을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쿠바 아바나를 갈 당시 토론토를 경유하는 에어캐나다를 예매했다. 토론토에 오후에 도착해 다음 날 아침 아바나로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토론토 도착 당일 저녁시간 만이라도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인천에서부터 출발이 거의 2시간가량이나 지연되어버렸다. 토론토에 도착해 공항 근처의 호텔에 들어가니 이미 저녁시간이었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시간도 꽤 걸려서 결국 호텔에서 잠만 자다 왔다.
도하, 광저우, 애틀랜타 같은 곳은 환승이 아니었으면 방문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이 곳 만을 목적지로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환승 기회를 잘 활용한 덕분에 또 하나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겨운 장거리 비행도 잘만 활용하면 여행 일정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