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를 받고서, 데이지 밀러

by seorok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는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독해해야 할 지 안내한다. 타자의 시선이 되어 보는 것. 그속에 잠재하는 애정와 분노, 후회를 한결로 느끼는 것.


데이지 밀러는 1800년대 후반, 자유로운 미국 여성을 대표하는 데이지가 유럽 사회의 보수적인 관념 속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으며 결국 고립과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로 관습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가운데,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사회의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중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윈터본은 철저히 유럽 사회의 시선으로 데이지를 바라본다. 윈터본의 시선이 결코 익숙하지 않았음에도 어느 순간 내게도 데이지의 자유로움이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책의 원제가 ‘Daisy Miller : A Study’ 라는 점이 참 흥미롭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풍성한 금발과 반짝이는 유리알 눈동자와 젊음, 유럽의 관습의 시선에서도 자유롭고 당찬 이 미국 여성의 플러팅은 윈터본을 관찰자로만 머물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윈터본의 데이지를 향한 study는 끝끝내 사랑이 되지 못했다.


윈터본의 사랑에는 “그녀는 단지 뉴욕 주에서 온 예쁜 아가씨일 뿐일까? (…) 아니면 이 아가씨 역시 음흉하고 뻔뻔하고 부도덕한 여자일까?” (P. 70~71) 라 말하며 고민하는 관찰자와 판단하는 자만이 남아있었기에. 데이지가 어떤 존재였는가 진정 알고 싶어하는 인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오해하고, 그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를 알고 싶어한다. 결국 데이지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닌,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이자 개인의 개성과 관습이 끝내 화해하지 못한 시대의 초상이 되었다.


자유로운 미국을 상징하는 데이지. 그녀는 언제나 자유로운 자연과 함께 등장한다. 그녀가 걷는 호숫가, 로마의 거리, 호텔의 정원 등. 늘 열린 공간을 향해 당차게 걸어 나간다. 반면, 좁은 방이 늘어진 살롱과 박물관, 그리고 데이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로마의 콜로세움. 유럽의 관습을 폐쇄적인 공간들과 연결지어 표현한 장치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혹여나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이 있다면 서문의 이야기처럼 데이지, 그녀의 죽음이 관습을 어긴 삶의 대가라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헨리 제임스는 그녀의 죽음을 도덕적 인과 관계, 즉 교훈적 서사로 읽히길 거부하며, 한 시대의 자유가 이데올로기와 충돌할 때,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비용으로 묘사한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그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관찰이 필요할까. 이디스 워튼을 시작으로 1800년대 후반의 신여성들의 당참이 흥미로와 여기까지 왔지만 솔직하고 밝은 여우 같은 데이지의 플러팅에 정신 못 차리는 윈터본은 제법 귀여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