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에 대한 목록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반 애들은 한 시라도 빨리 밥을 먹기 위해 뛰기도 하고 칭얼거리며 천천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멸치 대가리만 제외하고. 친구 없는 멸치 대가리는 늘 혼자였다. 점심시간에도 혼자였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조용해졌다. 그 많던 인파는 파도가 덮치듯 순식간에 교실을 비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애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기만 할 거야. 얼른, 뭐라도 해 봐. 맨 앞자리에 앉은 그 애는 애들이 모두 떠나기를 기다렸는지 교실이 조용해지자 허리를 숙여 가방 지퍼를 열었다. 혼자 남겨지기를 기다린 거였다면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누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확인부터 했어야 했다.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섣불리 판단하다니. 역시 멸치는 멸치였다.
그 애는 가방에서 촌스러운 체크무늬의 도시락 통을 꺼냈다. 도시락을 먹는구나. 그 애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태평히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반찬 냄새가 교실에 확 풍겨졌다. 왜 따로 먹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제와 같은 레퍼토리로 대화가 진행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도 않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소리라도 나면 그 애는 내가 있는 걸 눈치챌 거고, 그렇게 되면 그 애는 날 피하거나 무시하거나 어느 쪽이든 내가 원하는 결과는 나지 않을 터였다. 달그락. 수저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수저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찌나 소심하게 먹는지, 저 혼자밖에 없다는 걸 알고나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내가 아직 남아 있기는 했지만 멸치 대가리는 그걸 모르니까. 달그락. 꼬르륵. 어제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배가 고파왔다. 고등어 생선이 떠올랐다. 달그락. 꼬르륵. 하지만 멸치 대가리를 관찰할 수 있는 지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까. 달그락. 와중에도 그 애의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하아. 좋아, 간다.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아니 그러게 바로 식후땡 하러 가자니까.
그새를 못 참고 삼인방이 돌아왔다. 타이밍 한번 참 좋다. 평소 같으면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교실에 붙어 있지도 않는 놈들인데.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다. 부탁이야. 꺼져주면 안 될까. 내 바람과 무색하게도 삼인방은 먹잇감을 포착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먹잇감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멸치 대가리의 어깨가 한껏 치솟아 올랐다. 젓가락질도 이미 멈춘 채였다. 하도 발을 질질 끄는 통에 바닥에선 삼인방의 슬리퍼 소리가 진동처럼 울러 퍼졌다.
어어, 멸치 대가리 아냐. 뭐 먹냐?
삼인방 중 한 명이 멸치 대가리의 왜소한 어깨에 손을 둘렀다. 허어, 이건 뭐야? 야야, 이것 봐. 멸치 대가리가 멸치를 먹네. 그리 웃기지도 않은 말에 삼인방이 와하하 웃었다. 그 애의 어깨는 아직도 한껏 치솟아 올라 있었다. 아 멸치 냄새. 너 양치는 하냐? 삼인방 중 한 명이 코를 막았다. 삼인방 중 다른 한 명이 어디 냄새 좀 맡아보자며 멸치 대가리의 얼굴에 코를 들이밀었다. 멸치 대가리가 움직인 탓에 얼굴이 아슬하게 뒤로 비껴갔다. 으윽, 냄새! 야 양치 좀 해라. 어우, 멸치 비린내. 삼인방이 코를 막으며 질색하는 티를 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삼인방은 자기네들끼리 실실거렸다. 쟤네들은 저게 진심으로 재미있는 건가? 아무튼 삼인방의 기세에 눌린 멸치 대가리는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건지 급하게 도시락 통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수저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무시하냐? 삼인방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멸치 대가리의 어깨를 툭 쳤다. 멸치 대가리의 어깨는 손가락이 닿자 툭하고 힘 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툭. 툭. 툭. 별 반응을 하지 않자 이제는 어깨가 아닌 멸치 대가리의 수저통을 쳤다. 댕그랑. 높은 소음을 내며 수저가 교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끄러웠다. 니미럴 시발. 칵 퉤. 삼인방 중 한 명이 멸치 대가리의 책상 위에, 정확히는 멸치 대가리의 손 위에 침을 뱉었다. 됐어, 가자. 삼인방 중 한 명이 삼인방 중 한 명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다음에 또 개무시하기만 해 봐. 죽여버린다. 삼인방 중 한 명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야, 가자, 가자. 어깨를 잡고 말리던 한 명은 멸치 대가리의 머리를 한 대 치더니 드디어 발걸음을 옮겨 교실 밖을 나갔다. 아! 그토록 바라던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수저를 주워 멸치 대가리 책상 위에 올려놨다. 멸치 대가리의 손에는 삼인방 중 한 명의 불투명한 침이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닦을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근데 그렇게 충격받을 만한 일인가, 그게? 그러니까 멸치 대가리는 애들의 먹잇감이고 그게 공공연한 사실인데 그게 그렇게까지 충격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잖아. 넌 멸치 대가리잖아. 치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멸치 대가리에게 건넸다. 멸치 대가리는 내가 내민 손수건을 힐끗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도시락 통과 수저를 가방에 되는대로 욱여넣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뻘쭘하게 남겨진 손에 찬 바람이 일었다. 손을 거두고 조금 손수건을 조물 거리다가 맨 뒷자리에 있는 휴지통에 처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