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브런치를 시작하며

by Bridge K



(1)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유튜브라도 보는 것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알차게 보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영상에 중독되어 틈만 나면 짧은 영상으로 뇌를 기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책을 보려고 신경을 더 써봤지만 이내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한 듯하다.


(2)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어쩌다 아내와 입씨름을 할 때 "그때 오빠가 그렇게 말했잖아!"라는 한마디에 나는 제대로 대꾸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어제 먹은 점심 정도는 억지로라도 기억을 끌어낼 수 있지만, 아내에게 했던 말은 도무지 기억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3) 딸아이의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유독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숙제가 있다. 밀리고 밀려 몰아서 해야 하는데, 거의 창작 수준이다. 아빠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좀 나을까 생각도 해본다.


(4) 가을부터 시작되는 스*벅스 프리퀀시 모으기에 재미를 붙였다. 첫 해에는 아내가 이미 본인의 프리퀀시를 모두 채우고 남은 쿠폰을 내게 주어, 몇 개만 추가하니 꽤 괜찮은 몰스킨 일기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일기장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이듬해 사용할 수 있는 쿠폰도 함께 들어있어 꽤 쏠쏠한 즐거움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기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재미 삼아 꺼내보거나 생각날 때마다 간단히 적곤 했다. 하루의 주요 사건 정도만 기록하거나 며칠에 한 번 몇 줄을 끄적이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일기장이 생겼다. 역시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의 경품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성의 있게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전 일기장이 워낙 빈약했던 탓에 일기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1월 초에 내용을 조금 더 충실히 채우기 시작하자, 이후의 일기에도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였다. 때로는 글이 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짧기도 했지만, 그래도 페이지의 절반 이상은 채우고자 노력했다. 그날의 반성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스트레스받은 일이나 회사에서 느꼈던 부조리, 심지어는 상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하지만 일기장이 점점 글로 채워지는 모습은 꽤나 뿌듯했다.


어느덧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4년 차다. 퇴근 후 무료한 시간에 짧은 영상 몇 개만 본다는 것이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40대가 되어가면서 기억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주 실감하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집중하지 않으면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이런 고민들이 일기를 쓰면서 극적으로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기도 결국 글쓰기다 보니 글 쓰는 습관이 생겼다는 자부심은 생겼다. 고정된 독자는 없지만, 가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술술 읽힌다거나 잘 썼다는 칭찬을 건네줄 때(비록 립서비스일지라도) 소소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에서 주변의 이야기로까지 글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굳이 내 글까지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나만의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부끄럽지만, 글을 내놓기 위해서라면 그 부끄러움마저 견뎌야 하는 아이러니함도 있다. 특별히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작은 공감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내 글들이 세상에 나온 것에 덜 미안할 것 같다.


앞으로 내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게 될지 나 역시 궁금하다. 조금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 안다고 할 수도 없고,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연결된 이상, 내가 쓰는 말과 글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질 수 있는 말과 글로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