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이 ‘웃는 얼굴’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나름 세월을 잘 품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친구랑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에는 ‘엄마의 젊은 날’이 어렴풋하게 담긴 내 얼굴이 찍혀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마를 꼭 빼닮은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웬만한 머리핀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머리숱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우리 딸, 나를 닮아서 머리숱이 많아서 고생이네. 그렇지만 나중에는 좋단다.”
엄마의 이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요즘 와서야 확실히 깨닫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지인도, 정말 처음 보는 어떤 아주머니도 나에게 다가와,
“오, 머리숱이 정말 풍성하네요. 부럽네요.”라는 말을 한다. 요즘 와서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되면서, 이러다가 중년(미인의 기준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미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꽤 즐거운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 신간 도서를 정리하다가 표지가 너무 예뻐서 한참이나 들여다본 그림책이 있었다. 이마에, 눈가에, 입가에 주름이 가득한 한 할머니가 손녀를 안고 더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림책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라는 그림책을 쓰고 그린 시모나 치라올로는 자기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이 그림책을 창작했다.
그림책 속 할머니의 생일날, 손녀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주름살이 걱정되세요?”
할머니는 손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활짝 웃으면서, 얼굴 주름살에는 각각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 있어서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얼굴 주름살에 깃들어 있는 기억을 하나하나 손녀에게 말해 주기 시작한다.
이마 주름에는 할머니가 어렸을 때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눈가 주름에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즐거웠던 소풍 이야기가, 미간 주름에는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 이야기가, 입가의 주름에는 손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인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더없이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이 그림책을 보다 보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늙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있는 거울을 들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전보다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림책 속 할머니의 삶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슬픔과 헤어짐의 순간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모든 삶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삶으로 만들어냈다. 할머니만의 환한 웃음에서는 자기 삶을 잘 살아낸 사람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1902~1994)이 제시한 노년기의 자아통합감을 잘 이룬 대표적인 노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통합감이란 노년기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도 재발견하고 다가올 죽음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아직은 눈가나 입가의 주름살이 짙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주름살이 좋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주름 하나하나에 소중한 기억들이 잘 깃들 수 있도록,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풍성한 머리숱을 잘 관리해서 노년의 이쁜 할머니가 되는 것도 즐거울 거 같다. 그림책 속 할머니처럼, 나도 소중한 기억이 많은 멋진 할머니로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