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우리 도서관에는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오래된 독서 모임이 있다. 2011년에 구성된 인문학 독서 모임 ‘도서화풍’이다. 1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모임에 드나들면서 우리 도서관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매월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보는 눈도 넓혀가고 있다. 오래된 모임 역사만큼 우리 회원 간의 관계도 책을 매개로 촘촘해졌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미디어 세상이 주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에 책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깊이 생각하면서 삶을 성찰할 줄 아는 자신을 지키는 보험에 가입한 것과 같다. 언젠가는 도서화풍과 같은, 책을 읽는 독서 공동체가 세상을 지키는 그런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대부분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손 안의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 다른 옷을 입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상하게 그들의 모습은 개별적이지 않고 하나의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섬뜩함이 있다. 그런데 나도 언제부턴가 그 섬뜩한 대열에 끼어있었다. 버스를 타면 바깥 풍경보다는 손 안의 기기를 들여다보기에 바쁘고, 건널목에 서 있는 짧은 순간에도 핸드폰을 펼치는 나를 발견했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인터넷 세상에 중독된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해주는 책이 작년에 출간되었다.
바로 『도둑맞은 집중력』이다.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이 책을 쓴 요한 하리는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대학교에서 사회과학과 정치과학을 전공했다. 몰입 독서를 사랑했던 저자는 언젠가부터 깊은 독서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중력을 찾기 위해 프로빈스타운이라는 해변이 있는 시골로 떠난다. 인터넷 연결이 전혀 안 되는 핸드폰과 노트북만을 가지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러한 경험과 신경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의 많은 인터뷰와 연구 사례들을 엮어 집중력 위기의 원인과 해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460쪽이라는 상당한 부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 도서관에서 꽤 자주 대출되었다. 그만큼 ‘집중력 위기’는 사회적으로도 우리 현실에 닿아 있으며, 사람들도 각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사람들의 집중력 위기를 멀티태스킹 중독, 몰입의 실패, 짧아진 수면 시간, 건강한 식단의 붕괴, 코로나19와 같은 유행병, 오염된 대기와 같은 기후 위기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집중력 위기는 개인의 성찰이 부족한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잃어버린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온라인 세계에 머물도록 조종하고 있는 거대한 테크 기업들, 생존과 연결된 삶의 스트레스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불안을 기반한 집중력 저하의 위기 등,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구조를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다.
나는 사서로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수난 시대’ 대목을 몰입하면서 읽었다. ‘몰입’의 즐거움을 연구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깊은 집중 상태”라고 했다. 독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몰입 형태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에게 독서는 자신이 경험하는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차분하고 침착하게 인생의 긴 시간을 한 가지 주제에 바치고, 그 주제가 우리의 정신에 스며들게 한다.” 125쪽
노르웨이의 문해력을 연구하는 아네 망엔 교수는 종이로 읽는 정보와 화면으로 읽는 정보를 비교하는 연구에서 책으로 읽는 행위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을, 연구 결과로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사회 전반적으로 독서력이 낮아지면서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아네 교수와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사고하는 행위가 책에서 화면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깊은 형태의 읽기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더 책을 안 읽게 된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말 두려운 일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 교수 레이먼드는 실험을 통해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으로, 특히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행위가, 현실에서 실제 인물을 이해하려 할 때와 같은 인지 과정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타인의 내면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 패턴을 다시 형성한다. 우리는 더욱 통찰력 있고 개방적이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반면 소셜미디어를 장악한 단절된 비명과 분노의 파편에 몇 시간씩 노출되면 우리의 사고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138쪽
또한 책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산만해지고 ADHD 증상이 많아지면서 집중력이 약해지는 현상에 대해 사회 구조적인 면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도서관 현장이나 사회 곳곳에서 요즘 아이들의 낮아지는 문해력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요즘은 고학년 아이들도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지 못하거나 사용하는 단어가 협소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들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소중하게 들려있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서도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는 아이를 볼 때면, 어떻게 하면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 안내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다. 도서관에 자주 올 시간도, 책을 직접 고를 시간도, 놀이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도 부족하다. 아이들이 이렇게 고정된 시간 틀에 갇혀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은 어른들이 잘못된 사회적 구조를 만든 탓이다.
나는 예전처럼 아이들이 직접 도서관에서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골라 읽으면서, 자발적인 몰입 독서의 즐거움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