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해바람이 쉬어가는 소나무 숲, 대관령 자연휴양림

대학시절 추억 따라 대관령 휴양림으로

by Wynn

대관령과의 첫 만남은 대학교 시절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나는 잠시 휴학하고 1년 동안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열심히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마련한 나의 첫차. 그 차를 타고 처음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 강릉이었다. 넓게 펼쳐진 경포대의 고운 모래밭에 앉아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12월 어느 날, 절친한 대학교 선배 셋과 함께 떠났던 나의 첫 자동차 여행. 내 애마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동쪽의 겨울 바다로 향했다. 그 여행의 중간에 들렸던 첫 번째 휴게소가 바로 대관령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양떼목장 앞의 작은 휴게소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영동고속도로에서 가장 핫한 휴게소였다. 강릉에서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올라온 차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세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대관령 전망대에 올라서 강릉시내와 그 뒤로 펼쳐지는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밟아보는 대관령. 하늘이 검게 물든 새벽, 대관령 정상에 올라 바로본 강릉시내의 소박한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흐릿하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도시의 불빛들과 그 뒤로 펼쳐진 검은 동해바다. 그 위에는 수많은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가득했다.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젊은 날의 풍경이었다.

오늘 나는 대관령을 다시 찾았다.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 IC를 빠져나와서 강릉으로 향하는 국도를 달렸다. 그 설레던 기억을 되새기며 오랜만에 대관령 옛길로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양 떼 목장이 나왔고 대관령 주차장 앞에 잠시 차를 세웠다. 새벽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마주하며 올랐던 바로 그곳이었다. 오래전 추억 속 풍경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소박한 웃음이 나왔다. 대관령 정상에서 저 멀리 펼쳐지는 푸른 동해 바다를 눈에 담고 오늘의 목적지인 대관령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휴양림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걸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대관령 옛 도로를 내려오다가 어흘리 방향으로 들어와서 3분 정도를 달리는 휴양림 정문이 보였다. 예약자 확인을 하고 하룻밤을 보낼 숲 속의 집으로 이동했다.


입구를 지나니 숲 속으로 길게 뻗은 산책로가 있었고, 이 길은 야영장과 연립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하늘 높이 길게 뻗은 거대한 소나무가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코끝으로 산뜻한 소나무 내음이 느껴졌다. 대관령 휴양림의 숲 속의 집들은 소나무 숲 속에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 숙소 앞에 주차를 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청솔모방으로 끝에서 세 번째 위치한 숲 속의 집이었다. 5인용 숙소로 공간도 넉넉하고 바로 앞에 큰 테라스가 있어서 조용히 숲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방이었다.

짐정리를 하고 밖에 의자를 펴고 잠시 휴식을 즐겼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길게 뻗은 금강송 두 그루가 나를 살포시 감싸주고 있었다. 그 위로 하얀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대관령을 넘어서 강원도와 경기도로 여행을 떠나는 듯 했다. 솔솔 바다의 향기를 담은 가을 바람이 내 뺨을 스쳐지나갔다. 잠시 눈을 감고 온몸으로 휴양림의 자연을 즐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다의 바람이었다. 바람 소리가 멀어지니 소나무 숲 사이로 울려퍼지는 이름모를 새소리가 들렸고 졸졸졸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나를 감싸주었다. 행복이라는 것,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시원하게 맥주 한 캔을 마신 후에 휴양림 나들이에 나섰다. 운동화 끈을 살포시 동여매고 밖으로 나왔다. 대관령 자연휴양림의 근사한 산책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휴양림 뒤쪽으로 이어진 소나무 숲. 대한민국의 명품 숲이라고 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면 즐길 수 있는 산책로인데, 실제로 걸어보니 조금 숨이 찰 정도의 자그마한 동산을 오르는 등산, 솔직히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숲 속의 집 뒤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들어서니 대관령 계곡의 상쾌한 물소리가 나를 맞아주었다. 깊은 산 속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계곡물. 올해 만나본 계곡 중에 가장 깨끗한 샘물들의 모임이었다. 그 작은 계곡 위로 이어진 나무다리가 산책로의 시작이었다. 안내판을 보고 계곡을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안내표지판을 따라서 산책로를 걸었다. 중간에 살짝 비가 내려서 조금은 미끄럽기는 했지만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조금 걸어보니 운동화보다는 등산화를 신는 것이 조금 수월해보였다.


예쁘게 산 속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혼자만의 시간이었기에 홀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길을 따라서 걸었다. 계곡을 끼고 오르고 내리고, 다시 능선을 타고 오르고, 조금은 거친 숨을 내쉬며 걷고 또 걸었다. 처음에는 산책로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왔지만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니 살짝 힘들다는 느낌도 들었고 무념무상 잡생각들이 사라졌다. 오롯이 대관령 숲에 나 홀로 있다는 생각. 그렇게 천천히 숲을 즐기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자연과 함께 하는 고독의 순간. 세상에 찌들어 있는 나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나로 충전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막길을 오르고 서서히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다시 숲 속의 집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40~50분 정도 걸은 듯했다. 다시 산책로는 완만해졌고 길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이제 끝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저 멀리서 산책로를 오르는 중년 부부가 다가왔고 서로 살짝 눈인사를 했다. 나만의 있던 고독한 공간에서 다시 사람들의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생각. 길지 않은 산책길이었지만 이마에는 땀이 보송보송 맺혔고 옷도 살짝 땀으로 젖어있었다. 마지막 순간 긴 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봤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몰려왔다. 뭔가 해냈다는 느낌. 뿌듯했다. 숲 속의 집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대관령 숲길 산책을 마무리 했다.


흙과 솔잎이 묻은 운동화를 툭툭 털며 숲 속의 집 문 앞에 섰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다시 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소나무 사이로 유유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 바다의 내음이 또 한 번 느껴졌다. 푸른 바다 위를 달려온 바람이 강릉 시내를 거치고 다시 대관령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소나무 숲 속에서 느끼는 동해바다의 향기. 바로 대관령 자연휴양림이 주는 특별함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번 여름 말레이시아 ⑧ 랑카위 마지막 밤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