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떠난 가족과의 휴양림 나들이
붉게 물든 단풍과 선선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가을이다. 울긋불긋 물든 숲길과 조용한 산길을 거닐며 2025년 마지막 남은 가을의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고즈넉한 산길을 즐기기 위해 오늘은 양평에 있는 산음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산음 자연휴양림은 서울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양평을 지나서 홍천 비발디파크 가는 길에 있는데, 가는 길에 굽이굽이 산을 넘어야 한다. 경기도의 오지 중에 오지가 바로 산음 자연휴양림이다. 산음이라는 명칭은 '산그늘'이라는 뜻으로 폭산, 봉미산, 소리산, 싸리봉 등의 준봉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항상 산그늘에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산음리를 지나니 다양한 캠핑장과 키즈 풀빌라 등이 눈에 들어왔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물이 맑아서 다양한 여가시설이 들어선 듯했다. 좁은 시골길을 10여분 달리니 오늘의 종착지인 산음 자연 휴양림 입구에 도착했다. 사실 오늘은 숙소 예약을 하지 못한 상황. 가을이라서 그런지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휴양림 산책을 하면서 가을을 즐기고 싶었다.
산음 자연휴양림은 2000년 1월 1일에 개장했으며, 하루에 최대 2,000명 정도 머물 수 있는, 규모가 큰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에는 19개 숲 속의 집이 있었고 3인실 15개로 이루어진 휴양관과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연립동, 그리고 야영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설명서를 보니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휴양림 중에서 최대 규모가 아닐까라는 생각. 한 마디로 대단지 자연휴양림이었다.
티켓을 끊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산음 자연휴양림은 완연한 가을 세상이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가득했고, 여기저기에서 갈색으로 물든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숲 내음도 신록이 아닌 낙엽향 가득한 가을 냄새가 채우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건너니 휴양관이 나왔다. 휴양관 앞에는 가을을 즐길 수 있는 몇 개의 테이블과 함께 공연장도 있었다. 그 뒤에는 목공예를 할 수 있는 숲체험장도 있었는데 이미 몇몇 아이들은 체험장 안에서 목공예를 즐기고 있었다. 안내판을 둘러보니 숲 속의 집들은 휴양림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를 돌려서 휴양림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부릉부릉 살짝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니 숲 속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안내판을 보니 상당히 많은 숲 속의 집들이 산음자연휴양림에 있었다. 입구 쪽은 대부분 3인실이었다. 산까치동과 소쩍새동, 크낙새동, 독수리동, 종달새동, 비둘기동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이들 숲 속의 집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3 인동을 지나면 산 쪽 비탈진 곳에 규모가 좀 큰 방들이 있었다. 아마도 4인실 숲 속의 집으로 보였다. 다람쥐동, 오소리동, 산토끼동, 너구리동, 반달곰동, 고라니동이 줄지어 나왔다. 산 쪽 숲에 둘러싸여 있어 독립적이지만 계곡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단점이 있었다. 근데 이 근처의 단풍 색깔은 휴양림 내부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그 앞을 지키고 있었고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근처에 숙박하는 사람들 다수가 이들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뒤로 올라가면 숲 속의 집 규모가 조금 더 커졌는데 추정하건대 7~8인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사실 우리 가족도 4년 전에 산음 자연휴양림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소나무방에 머물면서 바로 앞의 계곡으로 내려가 가재를 잡았던 기억이 있었다.
숲 속의 집 중간쯤에 작은 운동장이 있었다. 농구장과 축구장이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가을 운동장이었다. 형형색색 가득한 화려한 나무들 속에 아담하게 놓인 작은 운동장이었다. 나와 아내는 이곳에 벤치에 잠시 앉아서 따뜻한 캔커피 한 잔을 마셨다. 하늘을 보면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만의 소확행이었다.
다시 휴양림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우리 곁에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작은 계곡물이 있었다. 여름에는 수량이 꽤 많았는데 가을에는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물이 모여있는 곳에는 남성스러운 계곡의 풍모를 보여주며 경쾌한 물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휴양림 주변으로 높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아홉 갈래의 계곡인 산음천을 따라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었다.
휴양림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야영장이 나타났다. 제법 추워진 날씨로 야영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 야영장은 잣나무와 전나무, 낙엽송, 자작나무 사이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야영장 편의시설 앞으로 펼쳐진 단풍 한그루. 화려한 가을을 담은 붉은색 옷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전나무와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가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최고의 풍경이었다.
야영장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 산림 치유 센터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1990년대 후반 조성되어 우리나라 산림치유의 시작점이 된 최초의 치유 숲이라고 한다. 전나무 숲을 걸으면서 향기를 맡으며 피톤치드와 자연의 소리를 체험하며 힐링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2~3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길을 걸으며 자연을 즐기기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치유센터 아래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숲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적혀있었다. 오전 10시와 오후 14시에 이곳에 모이면 1시간 30분 정도 숲길을 걸으면서 숲 해설을 해준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숲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숲 해설 대신에 잠시 정자에 앉아서 계곡 소리를 즐겼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숲을 즐기는 명상. 멍하니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산음 휴양림에서의 산책로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의 휴양림 나들이는 마무리되었다. 2025년 가을의 끝에서 만난 산음 자연휴양림. 부담 없이 주말 나들이를 떠난다면 한 번 들려볼 만하다.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