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앞 슈퍼마켓에 갔다.
딱 필요한 것만 골라 계산대로 갔더니 할아버지 한분이 먼저 계산 중이셔서 그 뒤에 줄을 섰다.
냉동만두, 막걸리, 주방세제... 혼자 사시는 분인가 보다.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중년의 여성 계산원에게 대뜸 만두의 조리법을 물었다.
으레 있는 일인 듯 계산원은 전자레인지에 돌리셔도 되고 끓는 물에 삶아 드셔도 된다고 빠른 말투로 응대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할아버지는 장바구니도, 비닐봉지도 없이 장본 물건을 주섬주섬 양손에 들고 매장밖으로 나가셨다.
2.
한 사람이 3인분의 몫을 해내지 않으면 도태되는 극한의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등- 소위 취약계층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40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왜 아무도 이런 건 알려주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몸뚱이만 아프면 어찌어찌 버티겠는데 내 부모가 아프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내 부모가 천지분간 못하는 어린 나를 건사했듯이 이제는 내가 나이 든 내 부모를 보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터넷 쇼핑을 대신해주고 휴대폰의 광고앱과 부가서비스를 정리하고 때때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모아둔 것은 없고 들어갈 곳만 남았는데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품이 되었으니 그만 물러나라고 한다.
그러니 조금의 실패도 허락하지 않는 시대에서 누군가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는 것을 보고 한심스럽다고 혀를 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본 일본의 오래된 찻집에서 허리가 굽은 바텐더가 공들여 구워주는 노랗고 도톰한 팬케이크에 입맛을 다시다 문득 그 옛날 민들레영토의 잘생기고 어여쁜 아르바이트생들을 떠올린다.
그래, 기후위기 때문에 어쩌면 노인이 될 기회조차 사라질지 모르는데 너무 미워하지 말자.라는 심술궂은 결론에 도달했다.
3.
지역 내에 사관학교가 있다.
종종 휴가를 가는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제복을 입고 캐리어를 든 사관생도를 마주치게 된다.
오늘은 병원에 가느라 오후에 외출을 했는데 서너 명의 생도들과 함께 지하철에 올랐다.
휴일이라 그런지 좌석은 거의 텅 비어있었는데 생도들은 모두 출입문 근처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딱 그 또래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붐비는 시간이면 모를까 왜 자리에 앉지 않는 걸까, 규정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찾아보았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다름 아닌 민원 때문이라고.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지만 부대로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대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4.
Love Wins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조금씩만 서로에게 너그러워지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