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피곤하지 않았다.
아쿠아리움 멤버십이 7월이면 끝날 예정이라 아까워서 그전에 한 번이라도 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 컨디션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오늘 엄마랑 아쿠아리움 갈래?”
“응, 엄마랑 아쿠아리미 갈래.”
어디를 간다는 건지 잘 모르면서도 엄마의 어감이 좋았는지 신났을 때 하는 그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아기의자에서 들썩거린다.
아쿠아리움이라는 곳에 가면 책에서 봤던 물고기, 물개, 개구리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해 주니 좋아하던 빠방도 오늘은 내려놓는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끔뻑끔뻑 졸길래,
“아들, 졸려?” 하고 물어보니,
“아니!” 하면서 눈을 번쩍 뜬다.
아니 잔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잠’이라는 말에 ‘어머 내가 잤어? 지금 잤어?’ 하는 표정으로 떨어지는 눈꺼풀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그저 귀엽다. 이러니 저녁마다 “코 잘까?” 하는 질문에 안 잔다고 난리지.
주차장에 들어서니 이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에 있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삼삼오오 함께 온 가족들을 보니 남편이 생각났다.
일요일부터 일하는 스케줄이라 주말에 어디를 함께 가본 지 사실 오래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올 생각을 하면 주차 찾을 때 어렵지 않을까, 낮잠 시간이 꼬이지 않을까, 화장실은 갈 수 있을까, 아이랑 둘이 외식하다가 밥이 결국 코로 넘어갈 것이라면 그냥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게 낫겠다 하면서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고 나서는 저녁즈음에 '휴, 오늘 날씨 좋았는데 좀 나갈걸 그랬나?' 하며 후회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왔다.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일단 물고기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고, 지나가다 큰 물고기를 보면 뒷걸음질 치며 원숭이처럼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아예 품에서 내려오지 않았었다. 앉아 있는 유리 뒤로 물개가 지나가도 간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얼마나 웃음이 났었는지.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이 성장한 아이는 유리에 손을 대며 물고기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고, 작은 해초 하나도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그중 큰 관심은 또래 아이들이었다. 옆에 누나가 물고기를 보며 하는 말을 들리는 대로 따라 해 보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가가 내미는 손을 살짝 만져보고, 앉아서 구경하는 형 따라 같이 앉아보고, 우는 아이를 보며 같이 울상 짓는 모습까지. 나에게는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공공장소이니 필요시 목소리를 줄여야 하고 원하는 것을 엄마가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 여기서는 조금 뛰어다닐 수 있지만 저기서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가야 한다는 말에 수긍하고 따라주는 아이가 너무 기특했다. 그렇게 점점 확장되어 가고 있는 아이의 성장 반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 게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움직여줬으면 하는 마음. 여기 좋아 보이는데 여기도 좀 와서 봤으면 좋겠고, 저기 가자고 하면 "네" 하고 잘 따라와 줬으면 하는 바람. 이전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마다 불필요한 짜증이 났었다. '기왕 나온 김에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거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내가 제시하는 방향에는 아이에 대한 배려가 많이 없었다는 생각에 늘 미안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의 모든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추었다.
"아들, 오늘 꼭 해야 하는 것은 없어. 그냥 너만 행복하면 돼."
거북이의 일대기를 짧게 보여주는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4D 영화라 거북이가 한 번 첨벙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물이 쫘악 뿌려지고 돌에 부딪히거나 긴장되는 순간에는 의자가 흔들렸지만, 아이는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즐기는 모습이었다.
상영을 마치고 나오는데, "엄마, 우리 유모차 어디 있어?" 하며 아이가 밖에 두고 온 유모차를 찾았다. 별 것 아닌 질문일 수 있지만 '자신의 것', '우리의 것'을 챙기는 모습 또한 나에게는 새로웠다. 앉고 싶어서, 유모차에 있는 물을 먹고 싶어서 찾은 것은 아니었다. 유모차가 어디 있는지 확인한 후 미세하게 안도하는 그 모습에 이 작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정확히 어떤 인식의 변화와 발전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커서 자기 물건 하나는 잘 챙기지 않을까 싶어 미래의 걱정거리 하나가 줄어든 느낌이다.
이제 곧 방학이라 그런지 원래 알고 있었던 종류보다 더 다양한 동물들이 아쿠아리움에 들어와 있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고 아이에게는 책에서만 보던 것을 입체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라 너무 좋은 경험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집에서만 있던 고양이를 밖에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풀어준 이후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에 있었다면 무한한 그 공간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며 살았을 저 수많은 물고기들. 열대 지방에 있었다면 몸에 딱 맞는 햇빛의 세기와 습도 아래서 편히 생활하고 아이들이 유리를 퍽퍽 치는 소리에 낮잠을 방해받지 않았을 저 도마뱀. 나무, 돌, 물 그곳이 어디든 자유롭게 펄쩍펄쩍 뛰어다녔을 개구리. 감탄하는 아이 옆에서 엄마가 생각이 참 많아 탈이다.
에잇, 배고프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평소 채식을 즐기는 편이라 점심으로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사실 먹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감사한 것이 많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음식의 종류와 양으로 속을 썩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잘 먹지 않아서 어머님이 그릇 들고 다니며 먹이느라 고생했다 하셨는데, 우리 가족에서는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음식을 심히 가리거나 끼적거리며 남기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분명 먹성은 나를 닮은 듯하다. 그것만 닮고 다른 것은 안 닮으면 참 좋으련만, 나도 가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거울을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가 있고, 남편도 아이의 이런 모습은 당신과 비슷한 것 같다는 코멘트를 자주 하는 것을 보면, 나를 닮은 비중이 분명 크다는 것을 느낀다.
내 스스로 좀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 생각해서 뭐든 안 닮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닮았기 때문에 그리고 비슷하기 때문에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면의 마음을 더 잘 알아주고, 타고난 기질에 맞게 잘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방향을 전환해보고 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 단 둘이 하는 첫 외식이었다. 원래부터도 뭐를 덥석 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왜 유난히 이 부분은 머뭇거렸을까. 주말에 집에 있지 말고 둘이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으라고 남편이 권유할 때마다 왠지 돈도 아껴야 할 것 같고, 남편은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우리 둘만 맛있는 것을 먹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면 걱정이 앞서 선뜻 나가지 못했던 지난날들이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데, 지금까지 왜 못했을까, 아니 왜 안 했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 그리고 이 순간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 너무 잘 먹고 있다고 고맙다고 남편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지만, 한쪽 입고리를 쓰윽 올리며 내가 먼저 제안했다.
"아들, 이제 아차 먹으러 갈래?"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었을 때 그 느낌을 '아 차가워‘라고 알려주었더니 이후 계속 ’아차‘라고 부른다.)
눈을 빙빙 돌리고 손을 둥굴레 둥굴레 돌리며 신나 해 한다. 요즘 기분이 최고 일 때마다 하는 몸짓이다.
된장국 드링킹하던 실력으로 아이스크림을 마지막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드링킹 하는 아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우리의 주말 데이트는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