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등장
얼마나 시간이 흐른지 모르겠다. 그냥 집 근처 공터에 앉아 있었다. 찾아갈 친구도, 가족도 없다는게 슬펐다. 그러나 있었어도 아마,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나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었기에 핸드폰도 그냥 두고 나왔다. 그냥 내 집 같지도 않은 그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마지막 표정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기한 없이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나, 하루도 버티지 못할 빈털터리였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저 멀리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경찰이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저희 집 지금 문제 있어요’ 하며 동네방네 광고할 일인가! 내 말만 들어줬어도, 진짜 왜 이러냐는 표정만 짓지 않았어도,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 남편의 이 처세가 지혜롭지 못하다 생각하며 분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신혼 초기 이런 갈등 상황에 서로가 무엇이 필요하고 큰 싸움에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몰랐기에, 아무것도 없이 집을 나간 부인을 찾을 수 있는 남편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리라 이해한다.
기다리던 남편과 경찰 곁을 말없이 지나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경찰관은 나를 따라와 물었다.
“자살 충동이 있나요?”
어후, 저 직업 정신 투철한 말투와 질문.
실종 신고에 출동해 매뉴얼대로 의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뿐일 텐데, 감정 없이 인간미 없이 물어보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더 상해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No."
이후 질문이 이어졌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와중에도 오늘의 상황이 시동생의 입을 통해 시댁 어른들 귀로 들어가겠구나 하는 게 내 걱정이었다. 지난번 집을 방문하셨을 때 시동생이 어머님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그 결을 보았기에, 이런 빅뉴스는 너무 입이 간질거리지 않겠나 싶었다.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건 괜찮지만, 혹여나 이 사건으로 아니면 내 어떤 행동으로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셨길래’ 하는 말이 나올까 싶어 그게 싫었다.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나의 행동이 부모님 하시는 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의식하며 자랐기에, 감정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상황에도 부모님을 걱정하는 것이 내 의식의 흐름이었다.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다’ 라는 말이 살아가며 가장 부담스러웠던 문구라 말한다면 내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려나?
며칠 후, 남편과 대화하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 하는 상황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이유를 물었다. 남편은 대답했다.
“동생은 가족이니까.”
몇 년도 아니고 몇 개월, 여동생도 아니고 남동생 (여동생이었다면 더 어려웠으려나), 거기에 몇 주 전 어머님 곁에서 ‘시월드’의 각인을 찍어준 대상인데, 그저 한 공간에 산다고 해서 평생 알아온 가족처럼 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노력하지만 그래도 어려울 수 있고, 다 괜찮다가도 작은 것에 갑자기 불편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섭섭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갈대 같은 내 마음은 나의 처한 이 상황이 괜찮았다 싫었다 하며 흔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