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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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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있었지만 75년 전 오늘, 전면전이 벌어졌다. 조선말부터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주권을 빼앗긴 약소국의 땅에서 내부의 갈등과 외부 간섭의 총합의 결과로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탈당한 나라가 회복되기도 전에, 3년 동안 서로 죽이고 죽는 살육이 벌어지는 전장戰場이 되어버렸다.


한국전쟁은 전쟁터가 한반도로 국한된 '제한전쟁'이었으나, 실상은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이념이 충돌이 무력 대결로 반영된 3차 세계대전과 다름이 없었다. 단지 전장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속내를 감추려는 더럽고 추악한 전쟁이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범한 일상을 원하던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고, 동서 진영을 대표한 나라들에게 한반도는 이념 대결의 전초기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라가 힘이 없었던 관계로 UN의 원조, 특히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전쟁을 지속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의사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그 결과가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지금의 휴전休戰 상태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축적된 사회적 모순이 폭발하고 있었다. 다시 친일 부역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독립운동가들과 대부분의 백성은 소외 계층이 되었고, 토지개혁을 둘러싼 계급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내부 모순에 미소 냉전이 겹치면서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소련의 개전 동의와 군사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전면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소련의 지원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통제하에 강력한 국방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패한 국가 수뇌부의 안보 불감증과 군 당국의 정보 오판이 겹치면서 북한의 기습남침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전쟁 수행의 주도권은 미군이 장악했고, 휴전협정 체결 과정에서도 한국은 서명 당사자에서 제외되었다. 300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국토 대부분이 전장이 되는 참혹한 결과를 겪었지만, 정작 전쟁의 시작과 끝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주권 없는 국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쟁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남한은 100만 명, 북한이 270만 명 정도의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그 가운데 사망자는 남북한 모두 40만 명 안팎이었다.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개인과 가족의 고통은 엄청나게 잔인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 이념 대립 속에서 이웃과 원수가 된 사람들, 전쟁고아가 되어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 했던 아이들의 아픔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참혹한 경험은 자유, 평화, 안녕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절감했다. 이념과 체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개인의 생명과 존엄성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전쟁의 참혹함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것이었다.




폐허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75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었다. 2024년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한국을 군사력 5위의 국가로 선정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영국과 일본을 제치고 달성한 성과다. 한국은 경제 규모는 10위권이지만 군사력이 5위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국가이기 때문에 정규군을 훨씬 능가하는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금액으로도 거의 10위권 수준으로 지출한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비축해 둔 무기체계 규모가 엄청날 뿐 아니라, 첨단 과학에 기반한 신무기는 한국의 군사력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단순한 무력 과시가 아니다. 국가 생존과 평화 수호를 위한 필수적 선택이다.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잠재적이고 지속적인 위협에 대응하고,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안보 환경에서 국가가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는 강력한 방위력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한국은 자국 방어를 넘어 유엔 평화유지활동, 해외 파병 등을 통해 국제 평화에 이바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군사력도 내부의 모순 앞에서는 무력했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헌법을 위반한 비상계엄을 빙자하여 일어난 친위 쿠데타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를 흔든 반란反亂었다. 2년 6개월 동안 온갖 불법과 자행했던 부정부패 범죄를 덮는 데서 더 나아가 영구집권을 꿈꾸는 게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계엄령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이는 헌법 질서를 철저하게 위반한 내란 행위였다. 다행스럽게도 국회의 신속한 불법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과 민주 시민들의 불의에 맞서는 용기가 나라를 지켜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그 힘은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1961년부터 1988년까지 군사독재 시절 경험했던 일이었다. 그중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시 자행됐던 살인적인 군사작전은 아직도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잘이자 비극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시민들이 맨몸으로 출동한 군인들에 맞섰고, 몇몇 바른 지휘관들과 젊은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무력 충돌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2025년 6월 현재, 국제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미국의 무도한 일방주의적 정책,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동의 지속적 분쟁 등으로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과거 한국전쟁 때와 같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약소국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주 국가로서, 민주 공화정을 정치체제로 운영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맹목적으로 강대국을 사대하는 굴욕적인 자세를 취해서도 안 된다. 최근 2년 6개월 동안 국제 외교 무대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던 모멸당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이다. 다자간 외교가 동맹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시기이다. 예전처럼 추상적인 동맹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5백 년 전 명나라에 사대하면서 명분으로 삼은 '재조지은再造之恩'은 이미 쓸모가 다한 구시대의 사고방식이다. 한미동맹도 이제는 일방적이 아닌 상호호혜원칙에 의거해야 한다. 또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는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구한말 시대와 전혀 다르다. 누가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 특히 북핵 문제는 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며, 강대국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다시 이 땅에 전화戰禍를 불러들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대한민국'의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자주적이면서도 국제사회와 조화를 이루고, 강력하면서도 평화를 사랑하며,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국가이다. 자주성은 타국의 간섭 없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방력뿐만 아니라 경제력, 기술력, 문화력 등 국력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국제질서 안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행동해야 한다. 일방적 고립이나 패권주의가 아닌,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힘과 평화는 모순되지 않는다. 강력한 국방력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며, 민주주의 원칙은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대한민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평화를 수호하되, 결코 침략이나 패권 추구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12월 3일 반란 사태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민주주의는 무질서나 무능과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거버넌스를 통해 민주적 절차와 효율적 운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한국전쟁 75주년을 맞는 오늘, 한국전쟁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자주권이다. 그때의 고통과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반드시 평화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12월 3일과 같이 불의에 동의하거나 침묵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경성警醒해야 한다. 자주권은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외교 행위를 보장한다.




진짜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강대국의 그늘에 숨어 있는 약소국이 아니다. 당당하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강대국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되 그에 갇혀 있지 않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한국전쟁은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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