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유 휴식 여가 욕망 희생 인간다움 인간성 인생의황금기
숨은 쉬고 살자.
한 때 숨 돌릴 틈 없는 일상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멈춤 없이 달려가다 결국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이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을, 성과가 아닌 과정을, 소유가 아닌 존재를 중시하는 사람다운 삶을 회복해가고 있다. 무엇 때문에 여유를 잃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첫째, ICT 기술 발달로 인한 업무 효율성 개선이 오히려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전보다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강도는 점점 올라가고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의 향상을 더욱 요구받았다. 그런 가운데 더욱 고독해졌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뜻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둘째,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생활이 심적인 압박이 많았던 것 같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던 시간이었다. 경제적인 염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차피 일이라는 건 만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 힘들지는 않았지만, 사람과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안이 없었으니 참을 수밖에...
셋째, 본질이 아닌 것에 마음을 많이 빼앗기지 않았나 싶다. 마케팅과 광고가 만들어낸 끝없는 욕심에 마음의 평안을 잃었다. 남과 비교하게 되고, 한정된 예산에 누리고 싶은 걸 다 할 수도 없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욕망의 희생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욕망이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멀어지는 요상한 물건인데, 헛된 걸 알면서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중반에서 50이 되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앞만 보고 달렸던 그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되어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보내야 했다. 후회한들 뭐 달라질 것도 없는데... 이제는 사람처럼 산 지 딱 10년이 되었다.
의도적으로 여백의 시간을 두고 살아왔다. 그냥 쉬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보냈다. 문학, 예술, 철학 등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내적 성장을 추구했다. 적정한 수준에서 만족하는 지혜를 배웠다. 돼지는 배가 80% 차면 멈춘다는데, 왜 그동안 탐욕으로 자신을 괴롭혔는지...
김춘수의 시보다 마케팅 카피에 감동하고, 동요보다 CM 광고송을 흥얼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숨을 고르며, 여백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회복해야 할 진정한 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