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은 일 년, 소비기한은 평생입니다.

교단일기

by 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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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일은 3월에 시작해서 12월, 늦으면 1월 초에 끝난다. 헤어질 날을 미리 달력에 써 두고 시작하는 이상한 만남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리코더도 불다가 마지막 날이 되면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3월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유통기한 사랑을 시작한다.


D-30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한 달 남았다.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나는 혼자서 이별을 준비한다. 일단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두 눈을 바라보며 한 번 더 웃어보려고 한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얘기에 맞장구 쳐 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1분 1초가 아깝다.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을 담은 카드를 쓰기 시작한다. 카드 23개에 학생 이름을 하나씩 쓰고, 일 년 동안 쌓은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며 응원의 메시지를 적는다. 우리는 고작 일 년짜리 인연이지만, 글로 쓰인 진심은 더 오래 가니까. 나는 나만의 흔적을 남긴다.


디데이가 되면 우리는 서로 악수하거나 가벼운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눌 것이다. 총 190일로 이루어진 우리의 만남은 이토록 짧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한다.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어린이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이백 명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반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유통기한 일 년짜리 인연이지만, 우리 추억의 소비기한은 평생이니까.


애매하게 남은 마음은 처리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남은 삼십 일 동안 모든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완전히 비워내야, 다시 새로운 어린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 일 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동안 나를 비워내는 일. 나를 떠나간 어린이들을 이따금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채우는 일.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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