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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May 17. 2022

신호등 앞에서

  

 신호등 앞에 섰다.  빨간불이다.  나는 벌거벗은 은행나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나무야! 

날씨가 따뜻해져 간다. 난 추운 게 정말 싫은데 어쩌면 넌 그렇게도 씩씩하게 견디어 낼 수 있니. 지난 겨울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걷다가도 너의 앙상한 마른 가지를 보면 감히 춥다고 투정을 부릴 수 없었어. 그래서 살며시 움츠린 어깨를 다시 펴기도 했단다. 갑옷처럼 오리털에 목도리와 장갑까지 두르고서도 춥다고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종종대는 내 모습이 너도 참 한심했겠다. 

  나무야! 

봄이 오고 너의 헐벗은 가지에도 겨울을 견디어낸 훈장만큼이나 눈부신 푸르름이 피어나겠지. 우리가 함께 견디어낸 겨울의 시린 기억들이 아련해진다. 가슴이 묵직해 오면 괜히 너에게 말을 걸고 혼자 답답해하며 마음을 달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너는 항상 그 자리에 의젓하게 서 있는데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처럼 세파에 휘둘리며 또 한 시절을 보내는 내모습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단다. 

 나무야!

오늘도 너는 “그저 세상은 견디어내는 것이다.” 라며 나를 가만히 타이르는구나. 하지만 나의 봄은 오기는 하는 건지 점점 지치고 자신이 없어진다. 어쩌면 기다리던 나의 봄은 내가 꿈꾸던 색깔로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다른 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무거워지고 호흡소리마저 거칠어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욕심은 초저녁 그림자만큼이나 늘어져 가고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 마음 같아.

  나무야!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죽기를 각오하는 너의 뜨거움을 사랑한다. 살기위해 가진 모든 것을 벗어 던지는 너의 용기를 사랑한다.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모든 것을 품어 감싸는 너의 넉넉함을 사랑한다. 너와 마주하면 움켜쥐려고만 했던 나의 초라한 빈손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텅 빈 손바닥뿐이었어. 세상살이에 시달릴수록 가진 것을 놓아버리는 너의 역설이 부러웠다.  ‘이제는 그만 놓아주자.’시퍼렇게 멍든 텅 빈 가슴을 풀어헤치면서도 시리고 아픈 이마음까지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연의 끝자락들이 아프구나. 

 나무야! 

서 있는 그 자리가 지겨워지면 어떻게 하니? 너도 봄 처녀의 화환같은 노오란 개나리나 분홍빛 진달래꽃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니? 나는 내 자신이 싫어질 때가 많아.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부담스럽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질 때는 낯선 기차역을 서성이는 내 모습을 상상해봐. 하지만 다시 내 자리로 돌아 가겠지.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막연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두 발을 가졌으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슬픈 짐승이지.

  나무야! 

저만치 보이는 봄 처녀의 모습 속에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위윙 위윙”하며 울려 퍼지는 한전 아저씨들의 무서운 전기톱 소리가 들려도 고개 숙이지 말자. 하늘을 향해 더욱 힘껏 우리의 가지를 쭉쭉 뻗어 나가자. 가지치기에 사정없이 잘려 나간 가로수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어. 나무가 말을 한다면 아프다고 그만 자르라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우리에게는 너희 말에 귀 기울여줄 마음의 여유가 없구나. 미안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같은 집에 사는 가족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언어를 사용는것 같아. 언어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간의 배려인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안타까움이지.

  빨간불이 깜빡깜빡한다. 

이별의 시간은 늘 우리의 생각을 앞서가는 것을 어찌하리. 하지만 익숙한 이별인 듯 나무는 언제나처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다. 지나가던 바람만 조용히 빈 가지를 흔든다. 

  어느덧 파란불이다. 나는 신호등 앞 건널목을 성큼성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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