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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Jul 09. 2022

꼴찌의 꿈



  “See you next time. Thank you. Bye.” 영어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은하야! 아주 잘했어.”라며 오늘도 영어 수업에서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나 자신을 스스로 토닥여준다. 영어 동화 수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삼 년이 되었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영어와 삼년씩이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그동안 나도 영어와 시멘트 담을 쌓고 사는 나름의 변명거리 정도는 있었다. ‘난 영어를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영어에게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등 내가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이고 설득력까지 있어 보이는 비겁한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딸이 미국인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영어에 대한 나름의 소신들은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사돈과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사돈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나에게 영어를 배워보라는 것이다. 칠십 대의 사돈이 컴퓨터 도전장을 내미는데 오십 대의 내가 영어 도전장을 못 받을까 싶어 겁을 상실하고 “yes.”를 힘차게 외치고 말았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사돈과의 약속도 흐지부지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영어 동화 반이 개설되었다. 나는 ‘동화니까 간단한 대화는 배우겠다.’ 싶은 순진한 마음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영어와의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슬픈 인연에 스스로 손을 내민 것이다.


  수업 첫날, 전혀 부담 없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글 밥이 적은 어린이 동화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주근깨투성이의 『빨간 머리 앤』이 방긋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는 어린이인데 내가 생각한 수준의 어린이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필리핀 선생님이 수십 년 전에 독립한 대한민국 땅에서 한국어를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영어로만 수업 진행을 한다는 것이다. “아! 이럴 수가….”


  다행히 난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이었다. 미리 준비한 자기소개를 띄엄띄엄하고 눈치껏 도망가는 것이 영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도망가기 적절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영어 못하는 것이 자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영어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며 눈치를 보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영어 못해 도망가는 내 모습이 싫어져 탈출 계획을 무작정 버티기로 변경 했다. 그러나 두 시간의 수업은…. 스무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진땀나는 시간이었다. 필리핀 선생님의 말에 까르르 웃는 친구들을 보며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내 속은 터질 지경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같이 웃자니 자존심 상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자니 더 어색했다. 모르는 언어로 인한 충격의 시간을 오기로 버텨보았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무아의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 약속을 했다. “도망가지 말자. 피하지 말자. 부딪혀 보자. 꼴찌를 하더라도 당당하자.”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을 버텼다. 나는 처음으로 영어 동화책을 품고 살게 되었다. 빨간 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 이솝우화, 큰 바위 얼굴, 작은 아씨들 그리고 어린 왕자까지…. 중학생 영어 실력도 안 되는 내 수준에 겨우겨우 이어가던 영어 동화 수업도 드디어 고비가 왔다. 어린 왕자였다. 그동안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이 책은 이제껏 읽어 온 다른 책과는 수준이 달랐다. ‘어느 누가 어린 왕자를 동화라고 했을까나?’ 어린 왕자는 동화가 아니라 철학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업 전에 미리 예습을 했다. 그러나 마음에 갈등이 심했다. ‘친구들에게 이제 그만 민폐를 끼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내 주제에 무슨 영어를 배운다고!’ 영어에서 도망갈 이유가 다시 차고 넘치게 밀려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철학적 의미들을 완전하게 이해는 못 해도 원문이 주는 문장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울창한 밀림처럼 엉클어진 단어의 숲을 지나 조금씩 다듬어지는 문장들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번역본을 참고하며 짜깁기 수준의 해석이었지만 내가 이제껏 어린 왕자를 제대로 읽기는 한 건가 하는 의심이 갈 정도로 전혀 다른 깊이의 감동이었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멘트 같이 단단했던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가슴에 녹아지는 문장으로 조금씩 허물어졌다.


  언어는 서로의 다름에 대한 관심이고 배려이다. 작가의 숨결과 점점 가까워지고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며 다른 언어에 대한 서로의 호흡법을 배워간다.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와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 왕자의 만남처럼. 영어 동화 수업은 삼 년 동안 많은 친구가 바뀌고 새로 들어왔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꼴찌 자리를 넘보는 친구는 아직 보지 못했다. 


  꼴찌라고 미워하지 않고 도와주며 가르쳐준 친구들 “Thank you!”

아무리 가르쳐도 전혀 진도가 안 나가는 답답한 제자를 내치지 않고 품어주신 그레이스 선생님도 “Thank you!”

  나는 여전한 부동의 꼴찌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영어 동화 수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비밀의 화원을 읽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영어책과 만나서 꼴찌의 꿈을 나누게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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