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책만 가까이할 수 없는 녹록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 책 읽을 시간이 널려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을 공평하게 허락하셨다. 인간의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개성대로 사용한다. 세상은 점점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나는 종이책을 대신해 볼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책과 멀어질 것 같은 조바심에 일부러 교회 도서관의 책 모임과 글 모임을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알고 문학책을 가까이하면서 마음 한 켠에 늘 짐이 있었다. 성경 읽는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 때문이다. 성경의 진리보다 세상 재미에 편승한 것 같은 미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성경에 집중하지 못하고 문학에 더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편하지 않았다. 성경을 모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무거운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다. ‘문학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는다.’라는 나만의 억지루틴을 정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성경은 더욱 숙제가 되고 율법이 되었다. 요즘은 성경을 파고들던 시간을 문학책과 나누면서 느낀 마음의 짐을 나만의 시간분배로 조절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새벽 시간에는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문학책은 해가 뜬 후 조금은 마음이 여유로운 시간에 읽는다. 불면증으로 잠들기 어려운 시간에도 수면제 대신 책을 잡는다. 나의 가장 소중한 첫 시간을 성경으로 시작하니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성경을 읽으면서 내 안에 질문이 늘어났다. 그런데 내 질문의 답을 문학책에서 인쇄된 글씨로 확인할 때가 있다. 주님은 내게 성경책 안에서만 대답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질문의 답을 몰라서 주님께 묻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나에게 주님은 명확하고 확실하게 인쇄된 글씨로 답을 하신다. 책 속에서 어떤 문장을 만나면 내 영혼의 키가 부쩍 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텅 빈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충만해진다. 나는 주님의 어루만지심으로 받는다.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의 저자 이정일 목사님은 “나에게 글쓰기는 기도이며 소명이다. 글을 읽다가 감동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신앙의 눈으로 다시 읽고 그 문장으로 자신의 일상에 밑줄을 그으며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라고 담담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나의 소망과 결이 닮은 작가를 만나 기쁘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성경과 문학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 모습이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주시어 감사하다. 아마도 내가 뛰어 넘어야 할 부담감이었던 것 같다.
목사님이 추천해주신 귀한 책들은 독서 목록에 메모해 두었다. 알라딘에 들러 최은영, 김영하, 양귀자, 황현산, 박완서 작가의 책 다섯 권을 골랐다. 치솟는 책 욕심에 잠시 갈등했지만 ‘이제 그만’하고 스스로 절제하며 돌아섰다. 좋은 작가들의 책을 가슴에 품으니 부자가 따로 없다. 가방끈이 짧은 나는 유명 작가 앞에서 늘 기가 죽는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쓰면 된다.
성경은 진리다.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성경과 문학을 굳이 분리해서 나누는 건 나의 부족한 믿음의 단면이다. 성경은 믿음의 여정을 걸어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들의 여정에서 지금을 사는 나의 믿음을 반추해본다. 문학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진리를 가슴에 품고 저잣거리로 나서는 우리의 다양한 발걸음이 문학이다. 그래서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나의 옹졸한 믿음처럼 성경과 문학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자. 주님 허락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나만의 답답한 시선에 가두어보지는 말자. 말씀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마음을 열 수 있는 넉넉한 마음 갖기를 소원한다. 나는 진리가 주는 자유함을 느끼고 싶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