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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Apr 03. 2023

때 늦은 대화

출근길이 낯설다. 감기로 며칠을 앓았다. 확연하게 달라진 아침 온도에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추위는 체감되지만 날 선 동장군의 매서움은 아니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봄이 당당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며칠 전 인천 사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00형 소식 들었어?”

  “00 아니. 왜?”

  “형이 죽었어. 나도 방금 장례식장 도착했어.”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무심한 내 성격을 탓하며 밤새 뒤척거렸다. 00는 이모의 큰아들이다. 나와는 동갑이라서 만나면 친구처럼 잘 지냈다. 내성적이지만 속이 깊은 친구였다. 00는 소란스럽거나 거칠지도 않았다. 눈이 사슴처럼 맑고 커서 나를 쳐다보며 두 눈을 껌뻑거리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결혼하고 서로 소원하게 지내다가 친정엄마 장례식에서 다시 얼굴을 대했다. 둘 다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이고 보니 전화로 안부 인사만 몇 번 더 나누었다. 그것도 십여 년 전에.     

 

다음 날 부천 첫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는 운전사를 포함해 승객 네 명이 전부다. 두 시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00는 영정 사진 속에서 여전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투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은하가”라며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눈을 빼닮은 미혼의 딸이 장례를 주관하고 있었다. 삼십 년 만에 처음 보는 00 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이모가 계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팔순의 이모는 몸져누워 있었다. 

     

00의 마지막 길은 적막했다. 고인의 핸드폰은 잠금장치가 되어있어 풀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의 세월을 부부로 살았다는 00의 처는 “남편의 친구 연락처를 단 한 명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결국 가족들밖에 없는 00의 마지막 길은 간간이 들려오는 이모의 흐느낌뿐이었다. 장례 일정을 마무리한 가족들은 애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무너지는 마음은 각자의 몫으로 보듬어 안고 돌아섰다. 나는 감기와 몸살로 출근 못하고 며칠을 더 끙끙거려야 했다. 겨울의 깊은 골짜기를 헤매는 것처럼 몸과 마음은 너덜거렸다.     


00야!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니.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을, 혼자만의 깊은 고뇌의 시간을 내가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생사의 경계선에서 ‘오직 이 선택밖에 없었다.’라는 너의 처절한 몸부림을 무슨 말로 대신 할 수 있겠니. 하지만 승화원에서 혼절하는 이모를 붙들어 안으면서 네가 참 밉고 원망스럽더라. 이 방법밖에 없었는지, 결국 이 결론밖에 도출할 수 없었는지, 다른 해결책을 찾아 볼 수는 없었는지 대답 없는 너를 붙들고 묻고 또 물었다.  

    

지난날 우리 선택은 미숙했어. 우리는 어렸고 인생의 파고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숙한 선택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노력해도 안 되는 인생의 연약함을 차라리 보듬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목숨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없었던 때 늦은 언어의 파편들이 가슴을 후벼 판다. 삼십 년을 애써도 회복되지 않는 결혼이었다면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이혼이 낫지 않았을까? 이혼은 결코 죄가 아닌데.     

 

이모는 네가 화장실에서 넘어진 것으로 알아. 노모의 충격을 걱정한 가족들의 궁여지책이었어. 가족여행으로 알고 부산역에서 출발한 이모는 너의 영정 사진 앞에서 가슴만 움켜쥐고 우시더라. 발인 전날 “은하야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죽을 수 있다니”라고 묻더라. 그러면서 다른 가족을 위해 쪼그리고 앉아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닦고 있는 이모의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방문 소리에도 두리번거리며 “00 얼굴을 찾게 된다.”라고 우시더라. 늙은 어미의 목숨 같은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믿기지 않는 세월을 어찌 살라고. 00야 이 바보야.     


사랑의 주님!

불쌍하고 연약한 00의 영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비록 아버지의 회중에 들어갈 수 없더라도 아버지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으로 00의 영혼을 보듬어 주옵소서.

고단한 가슴에 자식을 묻어야 하는 늙은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보옵소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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