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눈처럼 흩날렸다. “송옥자 님 0월 0일 0시 0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엄마의 낯선 얼굴 위로 이불이 덮였다. 칠십 평생 고단했던 엄마의 맨발이 가지런히 이불 끝자락에 놓여있었다. 출근길에 들린 듯한 의사는 길고 새하얀 의사 가운의 단추를 주섬주섬 잠그며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우리 형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다. 싸늘한 병원 침대에 누여진 엄마의 주검을 담담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효녀가 아니다. 살가운 딸은 더욱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내 자식만큼 사랑하지도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나는 그분의 딸이고 나이 들수록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 정도였다. 그런데 난 왜 엄마라는 그 이름 앞에 늘 가슴이 내려앉을까? 늘그막에 철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효녀 소리 한번 듣고 싶은 욕심일까? 아마도 내가 엄마라는 이름 앞에 가슴이 무너지는 이유는 미안함 같다. 사랑하지도, 잘해 주지도 못했던 무심한 감정의 짙은 소용돌이 같다.
엄마는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엄마는 늘 말이 없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귀를 대신해 온몸으로 가난을 떠받치며 우리 다섯 형제와 철없는 아버지를 지켜주셨다. 엄마를 몸부림치게 하던 간질 처럼 가난은 족쇄가 되어 치매라는 병명을 남겨주었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가족과 생이별한 엄마는 요양원에서 혼자 지냈다. 그리고 유언 한마디 남겨두지 않고 소천하셨다.
엄마는 다섯 자식이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주검으로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이야기했다. 엄마는 싸늘한 온몸으로 나에게 유언을 건넸다. 서툴어도 너의 목소리로 삶을 뜨겁게 노래하라고. 여전히 실수투성인 너의 부족함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라고. 아침 안개 같은 너의 시간을 눈물겹게 사랑하라고.
벚꽃은 여러 번 피고 졌다. 나는 엄마의 유언을 얼마나 기억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