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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20. 2020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나를 지켜주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건강, 지식, 돈, 사회적 지위, 명예, 인맥, 학벌, 종교, 어머니, 친구??    


요즘 노숙인 사건이 많이 들어온다.

대부분 겨울에 일어난 생계형 절도 사건인데, 겨울에 수사받고 기소되었다가 코로나로 잠시 멈칫했던 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소장을 보니 피고인은 일흔이 다 된 남자인데, 3천 원짜리 소주 한 병을 훔쳤다. 직업란에는 노숙인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비슷한 절도 전과로 항소심(2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있었고, 기록에는 그 사건의 1심 판결문이 붙어 있었다. 양형 이유를 보니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이라고 되어 있었다.    


접견실로 들어오는 피고인의 표정은

내 아이가 낯을 가리던 시절 타인을 만났을 때 경계하는 표정과 같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 사태가 대체 무슨 영문인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공소장을 보여주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기록 CCTV사진을 보여주니 자신이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영치금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르겠다.

식사는 하셨냐는 질문에도 모르겠다.

연세가 어찌 되시는지 묻는 질문에도 모르겠다.

가족관계, 지난 인생 모두 모르겠다.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그의 모습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억을 잃은 그에게는 매 순간이 새롭고 알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일 것이다.    


재판 당일, 법정에서 판사님께서 피고인에게 “항소심에 사건이 하나 더 있는 거 아시지요.”라고 하니 피고인은 모른다고 했다.

“항소심에 사건이 하나 더 있어요. 오늘 선고해 드릴 테니 변호사님이 항소 좀 도와주세요. 피고인, 항소심에 재판받는 것이 있어요. 그 사건이랑 이 사건이랑 합쳐서 같이 해 달라고 하셔야 되세요. 아시겠지요.”    

여러 사건을 따로 재판받으면 형량이 늘어난다. 여러 사건을 합쳐서 한꺼번에 재판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판사님은 이 사건도 빨리 항소심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재판하는 날 바로 선고하신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이 이것 말고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법정에서도 미간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렸다.

내가 접견 가서 이 사건 기록을 모두 보여주었는데도

그는 이 법정에 자신이 왜 서 있는지 당황스러워했다.

   

접견 때 내가 물었었다.

“선생님, 출소하면 짐을 찾으러 가야 하는 곳은 어디세요?”

피고인이 말없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 00이요.”

“맞아요. 그럼 부모님 성함 기억나세요?”

다시 피고인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모르겠어요...”    


징역살이를 마치고 출소하는 날 그는 교도소 앞에서 망설이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곧 길거리에서 자신의 이름도 잊겠지. 예전에는 컵라면을 훔치고 소주도 훔쳤지만, 곧 그 물건을 앞에 두고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날이 오겠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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