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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29. 2020

법무부의 자식

인터넷에 떠돌던 일명 ‘없다’ 시리즈    


10대 철이 없다.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돈이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낙이 없다.

70대 이가 없다.

80대 처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대 다 필요 없다.    


이거 누가 예측한 인생이냐. 이제 40대에 진입해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내가 없는 것하고 무섭게 겹친다.

   

그래도,

저 ‘없다 시리즈’가 내 경우와 얼추 맞는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불운한 사람들의 ‘없다 시리즈’는 저 순서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예측하지 못하는 일을 겪기도 하고, 다들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없어 낙오가 아니라 출발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없다 시리즈의 내 피고인들 버전    


10대 처가 없다(애는 있다).

20대 이가 없다.

30대 일이 없다.

40대 철이 없다.

50대 답이 없다.. 이런 식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의 이유가 제각각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그렇게 시작한다.     


조현병이 있는 20대 남자 피고인은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체크카드를 만들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갔다. 피고인은 이혼한 누나와 조카 두 명,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누나가 자살했다. 피고인은 이제 자살한 누나가 남긴 아이들 둘과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홀로 부양해야 한다. 피고인은 조카들을 위해 치료와 약물 복용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한다고 했다.    


보호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철저한 자기 관리라..    


40대 초반의 상습절도 피고인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피고인이 중학교 때 자살했다. 피고인은 어머니가 떠난 이후부터는 어머니 몫의 매까지 맞아야 했다. 견디다 못한 피고인이 아버지 앞에서 손목을 그었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피고인의 얼굴을 죽도록 발로 찼다. 피고인은 그 이후 집을 나와 아버지와 연락한 적이 없다. 여길 나가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말했다.     

거짓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한 20대 초반의 병역법 위반 피고인은 구속되기 전 정신분열증 어머니와 단 둘이 원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피고인이 중학교 때부터 증세가 심해져서 피고인에게도 식칼을 휘둘렀다. 피고인은 방이 좁았기 때문에 엄마가 식칼을 들면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많이 무서웠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피고인의 엄마는, 피고인에게도 규칙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었다. 기록을 보니 피고인에게 다른 전과는 없었다.    


피고인에게 그래도 이만하면 잘 자랐다고 말해주었다.    




너무나도 사연이 기구한 사람들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이재영(가명)이다.    

그는 내 또래였다. 키가 작고 말라서 나보다 더 왜소해 보였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의 본적(등록기준지)은 보육원 주소지이다.     


성인이 되어 보육원에서 나와야 했을 땐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자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 피고인의 머리 위로 대형 유리가 떨어졌다. 피고인은 이 사고가 나던 날 피를 많이 흘리며 쓰러졌고 병원에 후송되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세상 물정 모르는 피고인에게 공사반장은 일을 복잡하게 한다며 화를 냈고 임금을 주지 않았다. 피고인은 팔 근육을 다치고 손가락을 굽히지 못하게 된 장애를 입었지만 보상받은 것이 없고 임금 미지급도 문제 삼지 못했다. 물정 모르는 피고인을 이용한 사람은 사회적 강자뿐 만이 아니었다. 피고인은 병원비 빚을 지게 되었다.     


손을 잘 쓰지 못해서 그는 더 이상 일용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20대 초반부터 계속 리어카를 끌며 폐지와 고물을 주웠다.    


피고인은 폐지와 고물을 주우러 다니다가 다른 집에서 내놓은 책이나 쇠붙이를 보면 묻지 않고 리어카에 실어갔다. 그러면서 피해금액이 적은 절도 전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사건은 피해금액이 1만 5천 원이었는데 피해물품은 단독주택 열린 대문 앞에 쌓여 있던 책이었다. 주인이 책을 집 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잠시 앞에 둔 것이었다. 피고인은 절도 전과가 많아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절도죄로 기소되었다. 절도를 여러 번 한 사람에게 특별히 엄벌을 주는 법이다.    

 

피고인이 합의할 돈이 없고 합의를 도와줄 지인이나 가족도 없어서 결국 합의하지 못하게 된 사정을 재판부에 알렸다. 피고인은 같은 죄명의 다른 피고인들에게 통상 선고되는 형량보다는 선처?를 받아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억대 사기를 치고도 그 정도 안 받는 사람도 있는데. 남의 집 앞에 내놓은 책 무더기를 싣고 간 죄로 1년 6월이라니.     


피고인에게는 가족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다. 검거될 당시 피고인은 리어카를 옆에 세워두고 공원 벤치에서 자고 있었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 더 이상 지붕 있는 곳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피고인은 폐지를 종일 주워도 식당에서 하루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수 없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그의 영치금은 0원이었으며 방 사람들은 그가 오로지 관급물품에만 의지해서 산다고 그를 ‘법무부의 자식’이라고 놀렸다.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입소 시 관급으로 받는 속옷으로 1년 6개월을 버텨야 할 것이고, 방 사람들 사이에서 물품을 빌리느라 천덕꾸러기가 될 텐데 걱정되었다. 피고인에게 여분의 속옷과 세면도구, 방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간식거리들을 넣어 주었다.     


그가 2016년 6월에 선고를 받았으니 그는 2017년 12월 한겨울에 징역을 마치고 나왔을 것이다.

2017년 12월, 한강이 얼었다는 뉴스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가족, 집, 돈이 없는 그는 교도소를 걸어 나오면서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날 밤 어디에서 잤을까. 공원 벤치 옆에 세워 둔 리어카는 찾았을까.        


버섯은 음지식물입니다.

그래서 밝은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버섯처럼,

양지에서는

음지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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