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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20. 2020

좋은 날이올 거라고생각해요.

절도 사건 피고인을 보러 구치소에 갔다. 피고인은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60대 남성이었다.

   

가진 돈이 없고 배가 고팠던 피고인은 여러 편의점에서 생수, 컵라면, 찹쌀떡, 소주를 훔치고 신발가게에서 털신을 훔치다 걸렸다. 먹지도 신지도 못하고 빼앗겼지만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생계형 절도를 여러 건 해서 구속되었다. 생수로 절도죄 하나, 컵라면으로 절도죄 하나, 찹쌀떡으로 절도죄 하나.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절도 사건이 병합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절도 전과가 5개가 있는데, 검사가 엄히 처벌되는 가중처벌법이나 상습절도죄로 기소하지 않고 단순 절도죄로 기소한 것은 그를 측은히 여겨서 인 것 같았다.    


변호인 접견실로 들어오는 피고인을 보니 손톱이 손가락 반 마디만큼 길었다. 요즘 구치소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변호인도 피고인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접견한다. 그런데 그의 마스크 사이로 긴 수염이 삐져나와 있었다. 영치금이 없어서 손톱깎이와 일회용 면도기를 구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누를 빌려주는 수용자는 있을 수 있겠지만, 위생 때문에 손톱깎이와 일회용 면도기는 수용자들이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니 손톱과 수염은 깎기가 쉽지 않았겠지.    


그는 00역에서 노숙을 하며 사계절을 보내왔지만 작년 겨울부터는 견디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번 겨울부터는.. 제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숙도 나이와 건강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힘이 다른 것이다.     


그는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떡과 물을 훔치려고 했고, 신발가게를 지나다가 따뜻한 신발을 신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어 보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순대국밥집을 했지만 사업실패 후 이혼하고 거리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그는, 갈 곳이 없으니 출소 후에도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실례되지만 정말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춥고 배고픈 00역이 나아요, 자유는 없지만 이부자리가 있고 하루 세끼 식사를 주는 교도소가 나아요?”

“다 장단점이 있어요.”    

교도소에는 무슨 장점이, 00역 길바닥에는 무슨 장점이 있는 것일까.    


피고인은 불운이 네버엔딩 스토리로 이어지는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말했다.

말없이 듣고 있는 내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저는 그래도 견디면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일흔이 다 돼가도록 손톱깎이와 일회용 면도기를 살 돈도, 돌아갈 방 한 칸도 없는 사람의 인생에

좋은 날이 온다면 그것은 어떤 날일까.


그래. 좋은 날이 오겠지.   

차가 없는 나는 더운 날에 구치소까지 걸어서 접견 오는 것도 힘들고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는 것도 고되었다.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로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를 만나고 나서 힘을 얻었다.  

  

“그래. 좋은 날이 오겠지. 아니, 나는 매일이 좋은 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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