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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18. 2021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천지차이가 되는 경우 - 증여

변호사라는 이유로 일가 친인척과 지인 및 그 가족의 법률상담을 요청받을 때가 많다.    


이번에는 5명의 동생들(막냇동생 제외)로부터 증여계약을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당한

피고 측에게 상담을 해주게 되었다.    


그는 가난했던 집안의 장남으로서 동생들의 공부를 가르치고 결혼을 시켰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으며,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 남동생을 거두었다.   

 

그에게는 고향에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이 있었다.    

이 땅은 그가 젊은 시절에 산 땅이고 오랫동안 그가 세금을 내고 관리를 해왔지만

오래전 그는 동생들에게 시골에 있는 땅은 팔아서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땅과 관련된 호재가 생기고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동생들은 무엇이 들어서면(그 호재가 실현되면) 땅값이 더 오를 것이니 그냥 두자고 하여 바로 팔지 못했다. 그러다 그 땅이 국가에 수용되면서 보상금이 그의 명의로 들어오게 되었다.    


동생들은 이제 그 돈을 나누어 달라고 했고,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형제들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그를 상대로 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사업이 어려워진 그는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되지 않아 나 홀로 소송을 하고 있었다.  

  

증여계약을 이행하라는 소송이었고, 나는 그 소장을 보고

그래도 형제간에 약속을 하셨으면 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는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바로 줄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했다.    


그의 동생들은 장남인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장애가 있는 막냇동생을 돌보며 모든 부담을 지고 있던 시기에는 형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우애가 좋았다. 그러나, 그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는 본인의 자식도 많았고 사업도 어려워져 이제는 예전처럼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막동생만큼은 형제들이 십시일반 함께 도우길 원했다.


그는 동생들이 그 땅의 보상금을 나눌 것을 요구할 때 막 동생까지 포함해서 돈을 나누고 막냇동생에게 돌아갈 돈은 막냇동생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동생들이 거절하자 그는 막냇동생을 제외하고 나눈다면 막냇동생에 대한 돌봄과 비용을 앞으로 각자 공평한 부담을 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 역시 동생들은 각자 가정이 있고 장남도 아닌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중년이 다 되어가는 막냇동생까지 자신의 부담으로 돌보게 되었고,

그는 돈을 나누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협의하기를 원해서 재판 과정에서 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변호사 없이 조정기일에 나간 그는 형제들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로부터 증여계약과 상관없는 조건에 대해서는 협의할 수 없다는 단호한 말만 듣고 돌아왔다.   

  

동생들에게 연락했지만

동생들은 형에게

 ‘순리대로 하라’

고 싸늘히 말했다.    



나는 그가 그 돈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마 상대방 소송대리인은 그가 나 홀로 소송을 하면서

무지한 답변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답변서에 막냇동생을 제외하지 말고 공평히 나누자고 하거나

막냇동생의 돌봄비용에 대해서 공평히 부담하자고 쓰는 등 증여계약과는 무관한 내용만 잔뜩 적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돈을 나누어 준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구입한 고향의 땅을 오랫동안 가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고,

언젠가는 형제간에 이 땅을 나누자고 선심성 발언을 했었다.


평화롭게 지냈으나

그 땅의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그의 따뜻한 말은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는 당연히 소송에서 패소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다시 한번 조정하여 이 재판에서 막냇동생 문제를 형제들과 의논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막냇동생 문제를 조정 과정에서 끼워서,

그동안 장남이라는 이유로 홀로 졌던 책임의 무게감을

공감받고 싶고

공평한 부담을 약속받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의 처신에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도움을 요청받은 입장이라

그에게 아주 짧은 서면 하나를 써주었다.    


이후 원하던 조정을 거치지 못해서 절망하다 선고기일에 출석한 그는

승소 판결을 받고 놀라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내가 써 준 서면의 어느 부분 때문에 동생들이 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서면에 의하지 않는 증여는
              실제로 이행되기 전에는 취소할 수 있어요.                           


* 민법 제555조(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와 해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


나는

이 서면으로써 증여의 의사표시를 취소한다고 적었었다.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동생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무엇이 순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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