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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Feb 18. 2024

[2-02]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

삶은 언제나 우리를 필요한 곳에 데려다 둔다는,

가끔은 믿기 어려운 묵직하고 귀한 진실의 증거가 바로 여기, 우리 삶의 몫에 있다.




직접 조립하려고 사둔 판넬과 칠하다가 만 페인트, 아직 설치도 안된 창틀과 한참 테스트를 하다가 멈춰놓은 원두 샘플들, 고민을 하다가 들여온 두꺼운 느릅나무 고재 테이블이 한켠에 모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나 잘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발현되고 있는 이 공간을 준비하는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래된 것과 나이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 읽고 쓰는 것에서 오는 나의 기쁨을 한켠에 모았다.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취향의 반대편에는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길을 선택해서 이렇게까지 어려움을 겪는 것이 맞을까 싶은 마음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이 모든걸 잘해내야 할 것이라는 책임감이 한데 뭉쳐 사실은 나의 아주 아래 깊은 곳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게 맞을까.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뒤숭숭하게 만들던 그때, 나는 사람이 모여야 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일은 벌어졌고, 나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매달 나가는 은행 대출금이 모조리 나가고 통장 잔고가 0이 된 날, 결국 나는 친구들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갈 내일의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오늘의 내 모습도 있었다. 길 위에는 어떤 정답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믿음이 합쳐져 있다.




이 시작은 분명 서툴고 작지만 그래서 더 깊고 또렷하다. 안으로 깊은 마음은 결국 더 넓게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다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무거운 마음을 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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