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골목에 자리한 카페는 겉보기에 어제와 오늘이 매우 똑같은 모습이다. 하나도 바뀐 것 같지 않은 이 모습 사이에서 매일 조금씩 다른 일들이 펼쳐지고, 머릿 속으로는 다음 계절과 다가올 한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계속해서 궁리해 본다. 그게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은 날이면 이 공간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 이대로 아무도 오지 않은 채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숨결이 불지 않는 시간 안에 존재하는 침묵은 꽤 묵직하게 내려 앉는다.
유독 이런 날에는 조급해지지 말자고 마음을 되뇌인다. 카페의 문을 연 첫해의 조급함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매우 평온한 편이다. 쿠키의 계량을 다시 재어보기도 하고, 원두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파악한다. 어떤 메뉴를 수면 위로 올려야 할지, 언제부터 다음 계절 메뉴를 올리면 좋을지, 어떤 글을 올려 손님들에게 인사를 권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한참 이런 저런 생각들로 침묵 사이를 지나갈 무렵, 문이 열렸다.
"비 오는 길이라 오시기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아침에 비오는 걸 보고 생각나서 왔어요. 비가 와서 오늘은 조금 여유로울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한적한 날 여기 오면 참 좋은데, 사장님은 비오는 날 적적하시죠."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저도 좋아요. 이런 날 느끼는 기분은 또 다른 묵직함이 있잖아요."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몽근한 거품이 올라간 라떼를 건네 드리고, 자리에 다시 앉아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손님 역시 카페 한 켠의 책장을 유심히 살펴 보다가 한 권을 집어들어 앉았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 자리에 앉아 각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침묵이 이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책이 건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루의 절반 정도가 지나가고 있지만, 적어도 앉아 있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온기는 꽤 짙어지지 않을까.
"구워진 쿠키 다 포장해 주세요. 집에 가서 천천히 먹을게요."
마을 속에 깊이 자리잡은 공간은 그 자체로 온기가 있다. 그리고 그 온기는 다른 누가 대신할 수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우리가 꾸려가는 이 공간은 '나'의 공간처럼 보여도, 결코 자기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이라 느껴진다.
손님이 나간 뒤, 유독 손님으로 북적인 하루를 보냈다. 온기가 또 다른 온기로 전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