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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아임풀 07화

7. 거거블록

아임풀

by 여등

7. 거거블록


거거블록 입구는 안개가 자욱했다. 시대도 계절도 시간도 배경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없었다. 마치 허공중에 서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기사는 익숙하게 와 봤던 것처럼 한발 앞서 걸었다.

“저기, 나 이 곳이 처음이라……”

“따라와.”

기사는 덥수룩한 머리를 털며 말했다.

“검고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야……”

나는 우물거렸다. 안개 속에서 불쑥 해골 아바타가 뼈다귀를 덜거럭 거리며 걸어 나와 두 사람 곁을 스쳐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해골과 부딪히기 싫어 한 발 물러서며 주변을 보았다. 안개 속에 꽤 많은 아바타들이 느물느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모두 싸구려 아바타이거나 미완성 아바타를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습뿐이었다. 기사도 별로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맞지 않은 갑옷을 뒤집어 쓴 것 같이 어설펐다. 유난히 돋보이던 팔찌조차 힘겹게 기사의 팔에 매달려 있는 듯 보였다.


“거거블록을 들락거렸으면 뻔하지. 갖고 놀만한 아이지.”

기사의 말투가 거슬렸다. 기사가 우석이라고 할지라도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다. 마치 검고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안다는 말투였다.

“그럴 애가 아니야”

“그럴 애가 아닌지 장담할 수 있어?”

기사의 입가에 비웃음이 지나갔다.

“장담할 수 없어.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일을 함부로 말하지 마. 설사 드러난 일이라도 모두에게는 각자의 진실이 있는 법이잖아.”

기사에 대한 감정이 자꾸 삐걱거렸다. 우석을 생각하면 언제나 열떴던 마음이 지금은 왠지 미끈거리며 새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사의 한 쪽 입술이 올라가 얼굴이 비뚤어졌다.

여자가 말했었다.

“난 말이야, 사랑은 어느 낯선 곳에 어떤 낯선 모습으로 그가 나타나도 단번에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정말 그렇게 되는 건 줄 알았어.”

나는 잘 알아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우석일거라고 말해 주던 팔찌는 이제 지쳐 보이고 고독해 보일 정도였다. 마블타로의 네 가지 속성이 떠올랐다. 기사가 정말 우석이라면 나는 우석이의 무엇을 좋아했던 것일까, 의심은 여기까지 뻗어나갔다.


기사는 대꾸 없이 다시 걸었다. 걷다보니 길이 보였다. 안개가 걷히면서 붉은 피가 낭자한 거리가 나왔다. 거리 콘셉트 같았다. 걸을 때마다 핏빛 발자국이 찍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리에는 크거나 작은 기괴한 거울이 질서 없이 세워져 있었다. 각각의 숍 출입구인 듯 했다. 이곳을 드나든다는 거거들은 처참함과 난해함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기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붉은 빛이 유난히 도는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멈칫했다. 다시 돌아 나온 기사가 나를 보며 픽 웃었다.

“이런 각오도 없이 따라왔어?”

“여, 여기 검고가 있을까?”

“들어가 보면 알지.”

“여긴 뭐하는 곳인데?”

사실 겁이 조금 났다. 이곳은 무법자들의 블록이다. 무법자들은 사냥감을 늘 찾는다는 소문이다. 그것이 영트리 학생들에게 이 곳 출입을 금한 이유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법자든 메타폴이든 그들보다 먼저 민지를 찾아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민지가 두 번 다시 이런 곳을 찾지 못하게 제대로 한방 먹일 생각이다. 나비더듬이를 까닥까닥 흔들며 메신저 가방을 꼭 쥐었다. 불안의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지 않도록 호흡을 크게 하였다. 내가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 기사는 연신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둔자 팔에 매달릴 때는 강한척하더니……”

“도, 돌아갈 땐 도와 줄 수 있어? 여긴 차원터널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돌아가? 푸훗, 이왕 왔으면 즐기다 가야지. 여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아.”

“안 돼! 잊었어? 메타폴이……”

“그렇군. 메타폴. 검고는 출입증이 있으니 문제될 건 없지. 하지만 넌 출입증이 없잖아. 너 스스로를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냐?”

기사가 히죽 웃었다. 정말 그랬다. 출입증이 없다는 건 불리한 일이다. 학생이므로 출입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민지는? 아무튼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 민지를 끌고 가야 한다. 기사는 성큼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거울 속으로 한 발을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발도. 어둠. 거울 속 입구는 깜깜한 어둠이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었다. 잠시 뒤, 호오옹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고!”

“어머! 풀! 미쳤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어, 어디 있어?”

“네 코앞!”

검은고양이는 도무지 어둠과 분간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보일 거야. 어둠이라는 것은 익숙해지면 사라지는 법이니까…… 이 곳이 원래 그래.”

기사의 말이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어둠속에서 기사의 모습이 점차 희미하게 보였다. 기사의 어깨에 검은고양이도 있었다.

“뭐야? 검고! 서로 아는 사이였어?”

“우리? 그렇고 그런 사이.”

민지는 꼬리를 올려 기사의 가슴을 간질이며 말했다.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차례 또 애교석인 까르륵 웃음소리가 났다.

“그냥 가. 너랑 안 어울리는 곳이야.”

민지는 기사의 품에 코를 부비며 한껏 애교를 부렸다. 기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이제 나타났어. 얼마나 기다렸는데.”

민지가 기사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숙녀분을 모시고 오느라고……”

기사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주고 받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막힌 노릇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너, 기사가 누군지 아니?”

“기사의 실체? 실체를 알아야 해? 그건 메탑 예의가 아니지.”

민지는 발톱을 세워 기사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기며 말했다. 기사가 나에게 윙크를 하며 큭큭 웃었다.

“지금 메타폴이 떴어. 빨리 돌아가야 해.”

“서두를 거 없잖아.”

기사는 민지를 품에 안고 어둠속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둘을 놓칠세라 따라붙었다. 마치 허공을 걷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어둠속으로 들어갈수록 파동이 일치하지 않아 아바타와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중에 수많은 관들이 둥둥 떠 있었다. 막 관 속으로 들어가는 아바타도 있었고, 관 속에서 나오는 아바타도 있었다. 관에서 나온 아바타들은 하나같이 흐느적거리거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 로그아웃되어 사라졌다. 기사는 관 사이를 돌고 있는 가이드와 무슨 이야기인가 주고받았다. 이어 둥둥 떠 있던 관 하나가 내 앞으로 와서 뚜껑이 열렸다.


“자, 너에게 인심 쓰지.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들어가 봐. 천국이 그 안에 있어. 큭큭”

“필요 없어! 너나 들어 가!”

나는 악을 쓰며 기사에게 달려들어 민지 꼬리를 잡아챘다. 검고는 꼬리에 뇌파와 연결되는 마이크로칩이 있다. 꼬리를 움켜쥐자 민지는 힘없이 기사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기사는 멍청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꼬리 놔!”

민지가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꼬리를 손목에 휘감으며 절대 놓지 않았다.

“등급이 떨어진 이유를 알겠다. 그래놓고 내 앞에서 죽네 사네 해!”

“무슨 상관이야! 꼬리 놔! 관 속에 들어가야 해. 제발! 제발!”

민지는 사정을 했다.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정말 뻔뻔스럽다! 영트리 3등급!”

나는 민지 꼬리를 단단히 휘감고 출입문 쪽으로 달렸다. 민지는 발톱을 세워 마구 긁어댔다. 심지어 나의 자랑스러운 나비더듬이를 물어뜯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내 힘이 없는지 축 늘어졌다. 반대로 나의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나는 꼬리를 더욱 단단히 감아쥐었다.


다시 어둠이 나타났다. 당장 로그아웃 하고 싶었지만 민지가 로그아웃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억지로 로그아웃을 시킨다고 해도 여기서 로그아웃을 한다면 다시 접속할 때 거거블록이다. 그건 곤란하다. 일단 거거블록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속을 더듬더듬 나비더듬이 감각으로 출입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거울의 출입문으로 나서려는 순간 기사가 앞을 가로 막았다. 황당하면서도 오만한 표정.

“네가 오해 한 것 같은데, 관 속은 좋은 거야. 피로와 스트레스를 없애 줄 뿐이야.”

“그래? 그렇게 좋은 거면 너나 들어가. 난 아바타 설계자야. 어떤 원리인지 모를 것 같아? 저건 뇌파를 조정해서 무아지경을 만드는 최면뇌파야. 마약이라고! 몰랐단 말이야?”

“푸훗, 생각이라는 건 못하는 줄 알았지. 아무튼 아까운 솔라만 버리게 됐어. 한 번 경험해 보는 건 어때? 한번인데 뭐, 민지도 간절히 원하고 있잖아.”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얼굴을 드러낸 기사의 눈빛이 슬펐다. 슬픔을 본 것은 내 착각인지 모른다. 내 깊은 곳에서 고요를 증폭시키면서 눌러있는 폭풍 같은 슬픔과 닮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석이의 슬픔이 아니었다.

“민지? 검고가 민지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던 민지가 내 말을 듣고 머리를 들었다.

“내, 내가 민지인 건 어떻게 알았어? 기사…너, 너 도대체 누, 누구야?”

민지의 물음에 기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3등급도 별수 없군. 내가 누군지 몰랐단 말이야. 재미있네. 나 일등급 우석이잖아. 안 그래 풀잎!”

기사는 우석의 팔찌를 흔들어 보였다.

“네, 네가 우석이야? 그런데 네가 왜 나를……”

민지의 목소리가 덜덜덜 떨렸다. 아니 온 몸을 떨고 있었다.

“넌 우석이 아냐!”

난 입술에 힘을 주고 말했다. 확신이 있어서 말한 건 아니었다. 기사는 덥수룩한 머리를 털었다. 온 몸이 체념에 가까운 궁핍한 행동이었다.

“나를 우석이라고 한 건 너 아니던가?”

“그 땐 그랬지. 우석의 팔찌를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팔찌가 우석은 아니잖아? 지금은 네가 우석이든 누구든 비켜! 우린 나가야 해.”

달달달 떨던 민지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그럼 넌 누구야? 나, 나에게 접근한 건 너잖아.”

“네가 그렇게 경멸하는 하위등급으로 살아갈 사람. 아무튼 너희를 그대로 보내 줄 순 없어. 내가 곤란해져. 민지 너에게 출입증 만들어 주느라고 솔라를 너무 많이 썼어. 그건 갚아주고 가야지.”

“뭐?”

민지가 소리쳤다.

“이제야 네가 누군지 보인다. 나에게 보여주려던 것이 이거였어? 그런데 어쩌니, 네가 보여주겠다고 한건 안 보이고 네가 누군지만 또렷이 보이는걸.”

나는 기사를 똑바로 보았다.

“알아봐줘서 다행이야.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

기사는 중얼거렸다. 마블 팔찌를 흔들었다. 어둠 속에 우물이 나타나고 생각할 틈도 없이 기사는 우리를 우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물 속에서 나오자 오합지졸 아바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나는 손에 힘을 더 주어 고양이 꼬리를 더욱 세게 쥐었다. 민지가 신음소리를 냈다.

“참아!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내가 속삭였다. 민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는 곳이야?”

바짝 긴장하여 목에 걸린 소리로 기사에게 물었다.

“훔친 물건을 사고파는 곳, 아바타도 가능해.”

기사는 머리를 털며 말했다.


“메탑에서 가장 큰 범죄가 절도이라는 거 몰라! 도둑질은 메탑 오류를 만든다는 거! 혹시 우석의 팔찌도 훔친 거였어? 그날 오류도 도둑질 때문에……”

“마블팔찌는 팔 수 없지. 팔아지지도 않고. 마블이 나에게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대신 너희들 아바타를 팔아야겠어.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갈 수 있는 끝까지 가 보려고. 나도 이제부터 거거가 되거든.”

기사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무슨 소리야? 이대로 뇌파와 분리되면 실체에 어떤 충격이 가는지 몰라?”

“충격이야 좀 가겠지. 이정도면 민지 출입증 가격은……”

기사는 턱을 기울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은 곧 구겨져 꾹 누르면 오히려 눈물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기사는 지저깨비 같은 머리를 털어냈다.

“기사 오랜만이군.”

그 사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바타 틈을 헤집고 노랑머리를 한 제법 잘 생긴 아바타가 나타났다. 호감형은 아니었다. 노랑머리 아바타는 나에게 윙크를 하더니 기사의 어깨에 다정한 척 손을 얹었다.

“핸섬! 물건 좀 봐 줘. 솔라가 궁해서……”

기사는 턱으로 나를 가리켰다. 핸섬은 흥미롭게 나를 보았다.


“흠 꼼꼼한 아바타군. 마치 노움의 작품 같아. 로드숍에서 설계한 건가?”

노움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아는 척하지 않았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꼬리를 더욱 꼭 쥐는 바람에 민지가 품에서 꿈틀거렸다.

“그래 맞다. 로드숍 앞에서 우리 처음 만났지? 풀!”

기사는 힘없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난 고개를 돌렸다. 항상 안다고 생각한 것은 이렇게 돌연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저 놈을 우석이라고 착각한 내 자신이 작고 초라해졌다.

“검고는 어때? 얼마나 받을 수 있어?”

“검고? 저건 연습생이 만든 아바타 같은데……제법 솜씨 있게 만들기는 했어도 저런 건 값이 안 나가. 그리고 고양이 따위를 좋아하는 거거는 없지.”

핸섬의 말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검고는 내 작품이다. 처음 작품이고 스승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민지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은 내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다.

“풀, 아바타 설계를 한다고 했지? 그럼 검고는 네 작품이겠군. 검고를 안고 있을 때 느낌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기사가 빈정거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은 너의 아바타를 만들고 있었어. 너를 우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의 갑옷이 낡아 보였거든. 최고의 재료에 약간의 능력도 부여된 거야. 나에게 시간을 주면 그 아바타를 줄게. 그걸로 대신하자. 그걸 팔던지 네가 갖던지 네 맘이야.”

기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어째서 넌…… 넌 우석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재수 없이 폼만 재는 녀석을……”

기사는 괴로운 듯 말을 얼버무렸다.

“지금 그걸 생각하는 중이야.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뒷모습만 늘 바라봤으면서, 고백도 하지 못했으면서, 왜 좋아했을까. 아마도 올푸드자판기에서 좋아하는 것만 제조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어떤 요소가 우석이에게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나는 우석이를 좋아한 것이 아니고……”

여기까지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그 뒤의 말은 자신이 없었다.


홍차만 마시던 여자가 생각났다. 홍차를 만들던 원소가 떨어졌다고 삐삐 울던 올푸드자판기가 떠올랐다. “홍차를 주로 마시니까, 항상 홍차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원소가 가장 먼저 떨어져.” 여자는 씁쓸하게 웃었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기사는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털어냈다.

“그럼 그렇게 하던지, 네가 만들던 아바타로 받을 게.”

“이 아까운 아바타를 포기하게?”

핸섬이 나섰다. 그리고 몹시 아까운지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꽤 비싼 값을 받을 것 같은데……”

핸섬은 계속 느글거리는 눈빛으로 기사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됐어. 풀이 내 아바타를 가지고 오면 그걸 팔게. 아니, 어쩌면 다른 걸……”

기사가 얼버무렸다. 나는 깊은 숨을 쉬었다.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생각보다 기사 순진한데? 그 말을 믿어? 그러지 말고 풀을 해체하자. 5백 솔라 줄게.”

핸섬이 귓속말로 제시했다. 그 말은 다 들렸다.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다.

“핸섬, 나와 계속 거래하고 싶지? 그럼 이만 보내 줘. 나 마음이 바뀌었어. 풀의 말은 믿어도 될 거야. 그런 애니까.”

“6백 솔라. 그 이상은 안 돼!”

핸섬이 소리쳤다. 기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내 등을 쳤다. 나가자는 뜻이었다. 기사가 마블팔찌를 올렸다. 그때 핸섬이 소리쳤다.

“잡아!”

핸섬의 한마디에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던 오합지졸 아바타들이 기사의 손목을 붙드는 동시에 나와 민지를 잡았다.

“지금 당장 5백 솔라 줄게. 우리를 놔줘!”

나는 그들을 떨치며 가방을 열어 공중에 5백 솔라를 띄웠다. 공중에서 솔라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아바타들은 다투어 솔라를 향해 손목을 흔들며 달려들었다. 솔라 아이템은 잡는 자가 임자이기 때문이다.

“기사!”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기사는 팔찌를 흔들었고 셋은 동시에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거블록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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