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풀
“첫째 먹는 거야. 둘째 자는 거야. 셋째 생각을 멈추는 거야.”
나는 민지에게 손가락을 꼽아가며 명령했다.
“그 다음은?”
민지는 감자 포타주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물었다. 나는 구운 식빵도 곁들여 내 놓았다. 민지는 식빵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감자 포타주에 식빵을 찍어 마더 입에 넣어주려고 한 적이 있었다. 마더는 단호하게 손바닥을 내 보였다. “난 G7 유모로봇이란다. 사람처럼 먹을 수 없어.”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로봇이 되고 싶었다. 마더와 똑같은, 마더의 작고 귀여운 로봇이 되고 싶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회로가 생기고 전선이 엉키는 상상을 했다. 아, 그때부터였구나. 불안이 밀려오면 내 속에서 매캐한 전선 타는 냄새가 났던 거. 그것이 로봇이 되고 있는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던 거야.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생각의 고리 하나가, 갑자기 아무런 감동도 없이 툭하고 맥없이 열렸다. 나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일단 살고,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먹어.”
나는 보란 듯이 게걸스럽게 먹었다. 부드러운 등심도 조제해서 잘게 썰어 입에 넣었다. 민지는 잘 먹는 나를 무감각하게 보았다.
“역시 대열증일까? 먹기가 너무 힘들어.”
숟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민지가 중얼거렸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일단 너의 뇌파를 안정시켜야 하는데, 뇌파가 안정되려면 먹어야 해. 사람이 먹지 않고 어떻게 사니?”
나는 다시 스프 접시를 민지 앞으로 밀었다. 민지는 겨우 한 입 삼키는가 싶더니 구토 증상을 보였다. 민지도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짜 대열증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치료시스템은 안 된다. 그대로 영트리에 보고가 될 것이다. 대열증으로 보고가 된 뒤에는 민지를 구할 방법은 더 이상 없다.
“도와 줄 누군가가 필요해.”
내 말에 민지는 절망적으로 고개 저었다.
“누가? 리시티는 모두가 각자야. 누가 나를 위해서 시간을 쓰겠어. 멍청한 너 말고는.”
“민지! 말버릇 고쳐. 유모에게 배우지 못했어? 리시티 시민이 되려면 미덕을 배워야지.”
“로봇들이 뭘 가르쳐. 녹음기나 다름없는 것들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표준대로 가르쳐도 이렇게 제멋대로 자라는 걸 보면 유모로봇도 극한 직업이 분명하다.
“아무튼, 지금은 영양제라도 삼키고 잠을 좀 자자. 네 방은 치료시스템이 자동으로 돌아가니까 내 방에서 자.”
“지금까지는 괜찮았잖아.”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지금부터는 혹시 모르니까.”
“이 방은 괜찮아?”
“유전자번호가 달라서 인식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넌?”
“난 네 방에서 잘게. 네 방문 비번 넣어. 아침에 만나자.”
나는 손목을 내밀었다. 민지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비밀번호를 전송했다.
“메탑에 갈 생각은 하지 마. 일단은 불일치파동이 뇌파에서 모두 사라질 때까지 견뎌야 해.”
“너 언니 맞는 거 같아. 내가 정말 대열증이라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협박하는 말투지만, 민지의 표정은 종이로 만든 꽃잎처럼 파리했다.
“누가 누굴 버려. 그런 일 없어. 그리고 알아봤는데, 네가 먼저 태어났어. 너의 인큐베이터 번호가 더 빠르잖아. 네가 언니야. 그런데 내 친언니는 아니야. 051은 오류였대.”
민지는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넌 어쩜 그런 엄청난 말을 그렇게 덤덤하게 하니? 어떻게 알았어?”
“알바 갔다가 출산관리청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봤어. 확실해. 너는 정상이고 내 번호가 잘못된 거야. 어차피 사람은 모두 혼자야. 자기만의 샬레가 있고, 자기만의 방이 있어. 가족 따위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족이 없는 것이 정상이야. 넌 정상이고 아무 문제없어. 높은 등급으로 졸업할 거고 어쩌면 출산관리청에서 일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먹고 자고 정신만 차리면 돼.”
“오류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네가 엄마를 닮았을 거라고 상상했어. 아무리 생물학적 엄마지만 엄마는 너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엄마라고 말하는 민지 목소리에 힘이 쑤욱 빠져나가는 것이 보일정도였다. 당황스럽게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평소 민지답지 않았다.
“민지 너의 생물학적 부모는 더 좋은 사람이었을 거야. 훌륭한 리더 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제 그만 말하고 자. 자야 회복해.”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너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아니구나. 아무 관계도 아닌데 왜 나를……”
민지의 말이 바늘이 되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나야. 우리는 그런 관계야. 모두가 그런 관계이고. 그만 자자.”
유모로봇에게 세뇌될 정도로 외웠던 말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내뱉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전체가 나라면 내가 아플 때 전체가 울어야 한다. 전체가 아파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파하는 이 순간을 아무도 모른다. 아프다고 알려서도 안 된다.
민지는 모든 것을 게워낼 것처럼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먹은 것이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었다. 나는 민지의 등을 쓸어주다 그 등에 얼굴을 묻고 눈물이 터졌다. 정말 너와 상관이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만은 건강해져서 저들이 편집해 놓은 대로 질서 안에서 안전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꿈을 꾸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이곳에 어쩌다 태어난 것이 슬펐다.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던 메탑 조차 아스라이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의복제조기로 잠옷을 주문했다. 모든 옷은 1회용으로 제작된다. 사용한 물건들은 자동처리기에서 무해한 원소로 다시 돌아간다. 민지에게 잠옷을 던져주었다. 잠시 후 민지는 입던 옷을 나에게 던졌다. 마더였다면 “풀잎, 네 스스로 자동처리기에 넣어보렴.”이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말을 잘 들었다. 그러면 마더는 과자를 제조해 주었다. 마더는 나를 잘 길들였다.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던 로봇을 나는 사랑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민지가 던진 옷을 집어 들어 자동처리기에 넣었다. 먹던 음식물과 그릇들도 넣었다. 그런 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마더는 주문 방식이 다른 올푸드자판기에 불과 했던 거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수면 유도 파동을 키자 민지는 바로 잠이 들었다. 누워있는 민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눈가에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민지의 샬레 앞에 있던 여자의 망설임이 나의 모습에 클로즈업 되었다. “하지마세요. 엄마. 가엾잖아요.” 그날 밤 꿈에 나는 여자의 손을 잡으며 부르짖었다. 여자를 엄마라고 부른 사실은 내 자신조차 조금 의아했다.
그 뒤로, 이틀 동안 거의 온종일 민지 옆에서 스프란 스프는 종류별로 조제하면서 싸웠다. 민지는 여전히 힘들었다. 영양제를 억지로 삼킨 것과 몇 모금의 물로 버티고 있다가 겨우 다시 잠들었다. 다행히 1월은 시험은 끝나고 수업이 없어 자유롭다. 모두 메탑으로 몰려갔는지 영트리는 텅 빈 듯 두려울 정도로 고요했다.
[안녕? 로드숍은 닫혀있군.]
떠버리 문자였다. 떠버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종달새가 나타나 노래하듯 문자를 읽었다. 떠버리 문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나는 민지가 혹시 듣기라도 할까봐 직접 문자를 읽는 모드로 바꿨다.
[여전히 민지가 먹지를 못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해서, 대안세계분열증… 대열증이 맞는 듯도 보여]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답장이 다시 왔다. 떠버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치료를 받으려면 신고를 하는 것이……]
[그럴 순 없어. 만약 진짜 대열증으로 밝혀지면 민지를 구할 방법이 없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민지가 버리지 말라고 했던 말은 신고하지 말아달라는 의미였다. 민지의 부탁이 아니라도 내 스스로 신고할 수는 없다. 반드시 회복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어떤 검색에도 대열증 증상에 대해 어떻게 치료하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떠버리는 또 한참 답변이 없다. 시간의 간격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해.]
내가 먼저 다시 보냈다.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리시티 암묵적 미덕이니까.]
안다. 나도 안다. 실체에 관해선 관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모두 혼자서 각자의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 전체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자기 인생을 내려놓아야 한다. 갑자기 쓸쓸함에 치가 떨렸다. 몇 분이 지난 뒤에 떠버리 문자가 다시 떴다.
[우석이를 찾을 수 있어? 마블을 세 개나 가지고 있던 놈이야. 마블은 시스템 관리자가 아니면 얻기 힘들어. 그렇다면 그 녀석은 메탑 시스템과 관련 있는 것이 분명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우석이? 그래 우석이다. 메탑의 오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너무도 쉽게 전자파동도 해치시켰다. 어쩌면 민지가 겪는 뇌파불일치를 잡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등급 우석이가 대열증에 걸린 실체와 관여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다시 심의에 걸릴 수도 있다. 우석이를 위한다면 도와달라고 부탁해서는 안 된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뭐라 답장할 수가 없었다. 민지는 잔뜩 웅크리고 벽을 향한 채 무슨 꿈인가를 꾸는 듯 했다. 기분 좋은 꿈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로드숍 앞에 있어주겠어? 곧 갈게.]
떠버리에게 문자를 넣었다. 종달새가 나타나 말없이 날개만 퍼덕거렸다. 오라는 뜻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뇌파와 마이크로칩을 연결하였다. 5블록에서 로그아웃 한 상태여서 풀은 그 곳에서 등장했다. 아바타들이 5블록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헤집고 분수대 물로 뛰어들어 12블록으로 나왔다. 로드숍에 다다랐을 때, 대장장이가 소리쳤다.
“풀! 날마다 솔라!”
대장장이는 팔 근육을 부풀리며 말했다. 새해 인사이다. 나는 크게 손을 흔들어주며 눈으로는 로드숍 문에 기대 서있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어색하게 턱을 비틀며 머리를 털었다. 5블록에서 헤어진 뒤,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기사가 있어서 한편 마음이 든든하기도 했다.
“들어 와. 여기 내가 주인이야.”
“노움은?”
“6개월 전에 로드숍을 남겨주고 실체가 사라졌어. 난 실체를 알지 못해서 마지막을 보지 못했고.”
자세한 말은 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로드숍 곳곳은 모두 노움의 흔적뿐이었다. 다행히 기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민지는……”
“내 방에서 지금 잠들었어. 우선 신경안정 향초를 피워주고, 영양제를 억지로 먹여 재웠거든. 하지만 저대로 계속 둘 수는 없어. 정확하게 병명을 아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
민지를 생각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이틀간 민지를 간호하면서 억눌렀던 두려움이 복받쳤다.
“내가 원망스럽지?”
기사는 전시된 아바타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을 것 같아. 민지가 워낙 예민했잖아. 더구나 시험 때문에 더욱 예민해 있던 상태에서 메탑에 너무 오래 있었어. 아무튼 지금은 도와 줄 누군가가 필요해.”
“나에게도 책임은 있어.”
기사는 어디를 헤매다 온 것인지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자책하는 모습이 평소 기사답지 않았다.
“사실 나도 나름대로 대열증에 대해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녔어. 하지만 대열증에 대해선 그다지 자료가 많지 않아. 단지 증상에 대한 것과 신고하라는 것 말고는……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우석이 밖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기사는 머리를 털었다. 그러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나도 우석이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날 헤어지고 보지 못했어. 엉겁결에 헤어지는 바람에 마이크로칩 번호도 주고받지 못했어.”
기사는 의아하게 나를 보았다.
“그렇게 눈치 없는 놈이 뭐가 좋다고! 기껏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알아야 할 거 아냐.”
“무슨 말이야?”
나는 기사의 말뜻을 알지 못했다. 단지 우석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조금 거북했다. 기사는 말을 돌렸다.
“민지와 너는 세상에 없는 유일한 자매인데…… 그럴 정신이 없었겠지.”
기사는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세상에 없는……”
나는 무슨 말인가 이어서 하려했지만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이런 걸 악연이라고 하는 거야. 나를 만든 여자가 민지의 유전자번호를 나에게 주려고 했대. 그리고 민지를 없애려고 했었대. 민지가 예민해 진 건 어쩌면 샬레 때부터 닥친 불안 때문인지 몰라. 나는 민지 때문에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어. 그래서 민지를 살려야만 해. 민지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야. 그래야 인구수가 맞아. 나에겐 등급이 정해지지 않았대. 모르겠어. 아직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어. 꾹꾹 눌렀던 말들이 새어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말 대신 눈물이 먼저 삐져나왔다. 나의 눈물을 보자 기사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하다.”
기사가 조심스럽게 나를 안아주었다. 기사복이 덜거덕거렸지만 괜찮았다. 나는 콧물까지 흐를 지경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