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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15. 2016

스웨덴이 N극이라면 나는 S극이었다.

通(통)하였도다 - 왜 스웨덴으로 가세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무얼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부터 언제 결혼을 할지, 어디에서 살지 등 나의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중대한 결정까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단어 '선택(選澤)'은 가릴 '선'과 가릴 '택'의 한자를 사용한다. 여럿 중에 가리고 가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리고 가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기준은 개개인의 배경, 경험, 가치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이 소신껏 내린 결정이라면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까닭이나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이 번 글에서는 나 뿐만아니라 다른 유학생들이 스웨덴으로 유학가는 이유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다른 유학생들의 이야기는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서 주최한 유학생 사전 모임을 통해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며, 이 글이 모든 유학생들의 이유를 대변할 수는 없음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가지각색의 이유속에서도 발견되는 공통점이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Here we go! 우선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다.



내가 스웨덴으로 가는 이유

1) 행복감의 본질

    스웨덴은 덴마크, 노르웨이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외에도 아시아의 부탄이나, 라오스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곳들도 많다. 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에서의 삶을 선망하고 그들의 행복을 탐할까? 다른이들의 이유를 설명하기전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정의하는 행복은 무엇이며, 그 행복에 나는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다른값을 지니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행복이 물질적인 행복이든, 일시적인 행복이든 간에.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궁극의 행복감'은 개개인의 차이가 크기보다 비슷하거나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개체이자 '인간'이라는 같은 '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이미 우리의 유전자에 프로그래밍화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의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은 다 다르게 나타날지언정, 그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당신은 타인과 자기자신을 존중하고, 또 존중받고 있나요?

 '인간으로서 존엄',  어려운 말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언제 스스로 존엄하다고 느끼는지 생각해보자. 그것도 어려우면 내가 언제 기분이 나쁜지, 존중받는다고 느끼지 않는지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나의 선택이 '너는 왜 그러니?', '그냥 평범하게 살아' 와 같은 말들을 통해 남들과 다름에 비난을 받을 때 화가 났다. 기분이 나쁘기보다 분노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라는 의미인데, 내 삶을 남들의 삶과 같이 맞추는 것은 나의 주체적인 삶을 짓이겨버리는 것 같았다. '남들의 삶이 잘못되었기때문에 따르고 싶지 않아!'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는 내 삶을 살고싶다는 것 뿐이다. 남의 삶은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또한 나는 정의롭지 못함에 자주 분노하곤 했다. 정의는 개인간의 올바른 도리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일컫는다.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 이룬 집단인만큼 개인간 정의가 지켜져야 사회가 정의롭게 굴러가고, 이 정의로운 사회시스템에서 개인은 다시 정의를 위하게 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 처럼 정의로운 개인이 먼저인지, 정의로운 사회시스템이 먼저 구축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혀야 결국 개인과 사회가 모두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6년간의 삶 속에서 나는 정의가 권력, 재력, 타고난 배경에 의해 정의가 지켜지않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다른가? 이 세상에 100% 유토피아적인 곳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스웨덴은 '대체로' 정의가 잘 구현되고 있는 나라다. 사실 내가 얻은 스웨덴에 관한 정보는 미디어나 그 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 얻은 것이 대부분이다. 미디어는 정보를 편집해서 보여주고, 내가 만난 친구들은 모든 스웨덴 사람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얻은 정보 역시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상에는 '경향'이 존재하고 이는 그 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인사이트를 준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스웨덴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국민과 국가의 노력에서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100% 이상적인 국가는 아니겠지만 그 노력을 엿보고 내 삶에 녹여내어 시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진일보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스웨덴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 열림과 평등

   

생각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따를 뿐입니다.

 유학을 결정하는 이유가 반드시 그 나라에 살아보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학부에서 그친 공부를 석사 프로그램을 통해 더 깊이있고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또한, 지금까지 공부한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스스로를 챌린지함으로써 나의 생존력을 키우고 싶었다. 다름앞에서 나는 수없이 긴장하고 무너지는 쫄보가 되겠지만 그 과정들이 결국에는 또 다른 내 모습을 찾아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 환경이 가장 효과적으로 내가 깨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나 지적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 후 내린 답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공부한 환경과 대척점에 있는 곳이었다. 비슷하면 안주하기 마련이고, 비슷한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해있던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정답이 정해져있기 마련이고, 질문은 금기시되었으며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보다 빨리 하나의 답을 찾는 것이 중요시되어왔다. 이때문에 워낙 질문과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오픈된 공간에서 타인의 생각을 듣고 서로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즐거웠고 이런 환경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또한 한 과목을 끝낸 후 다른 과목을 수강하는 스웨덴 대학교 시스템은 밀도있는 수업을 원하는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외에도 교수님과 학생의 관계가 위계적이기보다 평등하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 의하면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위계질서가 가장 심하지 않은 나라다. 교수님과 학생의 관계가 위계적인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위계질서가 때로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지적 토론을 방해하기도 하고, 관계 맺음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교수님의 의견에 반박하는 학생들이나 질문 공세를 퍼붓는 학생들을 우리 교육 사회에서는 보기 어렵다. 나는 이 현상이 단순히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위계질서에 기반한 존중을 배우지 못하고, 정당한 권위로 잘 못 해석하고 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등하다는 것이 무례하거나 오만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수님과 학생의 관계가 평등할 때 열린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지적,인격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사실 어릴 적엔 스웨덴에 가면 내가 꿈꾸는 이상적 삶을 모두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도 사람이 사는 만큼 다양한 문제가 현존하며 갈등을 통해 사회도 발전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잘 실현하고 있는 나라인만큼 2년 동안의 석사 생활은 내 삶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이에 녹아드는 자세와 어려움을 피하기보다 겪어내는 것일 뿐이다. 이번 글을 통해 내가 스웨덴에서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좀 더 분명해졌다. 

스웨덴 유학생들의 모임 7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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