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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09. 2018

[에필로그]스웨덴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취향: 자기다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것.

취향을 찾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제각기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녔다.(출처: pixabay)

취향을 찾고 있어요. 자기다움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이미 이 두 가지 토끼를 잡은 사람들이나 잡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껴요. 취향은 결국 자기다움이 녹아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기다움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나의 애정이 기우는 것, 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내 심장을 설레게 하는 것들에 마음을 쓰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더 어려운 것 같았어요. 적어도 제게는요. 나의 직업, 내가 공부한 전공 등 내가 원해서 택한 것들도 있지만 나이, 여자, 집안에서의 내 역할, 사회적 관습 및 규범 등 대부분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부여된 것들이 나에게 가하는 압박이 싫었어요. 그래서 도망쳤어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오롯이 나를 드러내고 살아보고 싶어서.





스웨덴 그리고 나
Stockohlm (bjorn_olin)

스웨덴, 저만의 유토피아로 간직하던 곳이었어요. 개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의 삶을 먼저 배려하고, 내가 몇 살인지 또는 내가 어디에 속했는지에 따라 나를 규정짓지 않는, 오롯이 나로서 지낼 수 있는 사회라는 기대를 품고 떠났어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2년을 보냈어요. 나를 정의하고 있던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타이틀은 다 떼어버리고, 매 순간 그냥 저로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기보다 눈치 볼 것도,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나로서 살 수 있었다 생각해요. 덕분에 나의 욕구들에 잘 집중하게 되었고,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었어요.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나는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 줌바에 무아지경 빠져버린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나는 리듬감은 꽝인 줄 알았는데, 평균 이상은 하는 사람이구나 자신감도 얻게 되었어요. 해보지 않아서, 또 남의 눈치를 보느라 몰입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모를 수밖에요. 스무 살 적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해야 할 때, 끝나자마자 열등감과 부끄러움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던 내가, 지금은 발음이나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영어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언어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됐어요. 식습관의 자기다움도 생겼어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붉은 고기인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굳이 찾아 먹지 않아요. 또 요리를 잘 하지는 못 하지만, 음식을 나눠먹으며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일을 너무 좋아하는 내 모습도 발견했어요.


반면에, 혼자 있는 것은 좋아하지만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것은 싫어해요. 적당한 군중 속의 고독이 좋아요. 분리되어 있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는 듯한. 적극적으로 소통하지는 않아도, 엿들으려 하지 않지만 우연히 사람들의 삶을 듣게 돼요. 다들 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한편, 차가운 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물을 냉장고에 넣지 않거나 항상 물을 데워먹죠. 편의점에 가면 상온의 물을 찾고, 여름에도 따듯한 커피를 마셔요. 그리고, 반복되는 것들보다는 변화하는 것들을 좋아해요. 반복에서 오는 안정감보다 복잡해 보이지만 일련의 규칙 속에서 변화하는 것들에 마음이 당겨요. 매일 똑같이 걷는 길이라도 꼭 한 골목은 돌아가 다른 곳을 탐험하고,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운동보다 동작 동작이 변하는 운동이 재밌어요. 춤은 규칙적이지만 동작과 노래가 계속 변하고, 달리기는 반복적이지만 달리는 곳에 따라 나의 달리는 경험이 바뀔 수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뭐를 좋아해? 뭐 먹을래? 뭐 할래?'라고 물을 때 '아무거나'와 같은 애매할 대답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사실 '아무거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도 생각했는데, 배려는 일방향적인 게 아니잖아요. 나와 상대의 취향을 모두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어요. '취향을 찾고 공유한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네요.


취향을 알아가다 보니 혼자 있길 불안해하던 사람이었던 제가, 혼자만의 시간을 저를 위해 보내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아니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아 만나거나. 그게 책을 통해서 일 때도 있구요, 유튜브이기도 하고, 아니면 직접 찾아가기도 해요. 어릴 적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남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어떤 것이라도 한다는 사실로 불안함을 떨치려고 했음을 이제야 깨달아요. 그때는 몰랐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집중을 못하니, 남들의 취향을 내 취향 인양 필터링 없이 흡수하게 되더라고요. 남들이 엄청난 자기탐구를 거쳐 찾은 취향과 자기다움을 내 것인 마냥 가져와 옷을 입은 거죠. 내 옷이 아닌데 내게 맞을 리가 있나요? 그러다 보니 참 많은 시간 동안 방황을 했어요. 나는 무엇에 푹 빠져있지? 를 깨닫지도 못한 채.



2년 동안의 스웨덴 생활은 석사로서 학문을 깊게 탐구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에요. 여담으로, 저는 학문적 성취보다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우는 배움이 더 맞더라구요. 나 자신을 찾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을 품은 그곳에서 돌아온 지 2년이 지났네요.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는 참 무서웠어요. 돌아가서 내가 스웨덴에서 배운 것들을 다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려야 하면 어떡하지? 변한 나와 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가치 충돌이 일어날까? 어떤 가치는 잘 맞을까? 사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틀 또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통해 나를 정의하려고도 해요. 나이, 성별, 직업, 타이틀 등 나의 본질이 아닌 나를 둘러싼 액세서리만 보고 말이죠. 하지만, 돌아온 후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언제 행복을 느끼며, 삶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탐구하는 것도 어려운데, 실천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취향을 적극적으로 찾고, 자기다움을 삶과 일을 통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분들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어요.


풍덩 빠져보면 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녀와 아버지는 바닷가에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바닷물의 온도가 괜찮은지 알아보라고 했다. 다섯 살인 그녀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신이 나, 바닷물에 다가가 두 발을 담가보았다. "발을 집어넣어봤는데 차가워요."
아버지에게 돌아온 브리다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바닷물까지 데리고 가더니, 아무 말 없이 물속에 풍덩 집어넣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곧 이것이 아버지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재미있어했다.
"물이 어떠니?" 아버지가 물었다.
"좋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 앞으로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도록 해."

                                                                                                          -파울루 코엘료, 브리다 발췌


파울루 코엘료의 '브리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예요. 21살의 브리다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마법을 배우는 이야기예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깔린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며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자아를 찾아가요.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이 길이 자신의 길인지 확신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려움을 극복하죠. 24살에 브리다를 만났지만, 브리다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이제는 배운 것을 실천해 보는 담대한 용기가 생겼어요. 브리다가 달 전승을 통해 마법을 배우며 자아를 찾아갔다면, 제게 있어 자아를 찾는 마법을 배우는 방법은 글을 쓰는 거예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또 내가 느낀 바를 나누는 것.


나다움과 나만의 행복을 찾고자 떠난 스웨덴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글을 써온 지난 4년, 나를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타인과 연결되는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해 독자와 연결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들의 세상을 여행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나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 생각해요. 글을 통해 먼저 나에 대해 배워가요. 나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녹여내며 들여다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요. 나를 둘러싼 사람과 우주를 이해하는 것. 그 길이 나는 나로서 타인은 타인으로서 온전히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일이라 믿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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