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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pr 09. 2019

스웨덴에서 찾은 희망을 옮겨 심은 이유

2년 후 헬조선은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었다.

[목표는 헬조선 탈출]

대학시절 나의 목표는 오로지 헬조선 탈출이었다. 무한경쟁의 사회, 초 고밀화된 도시, 미세먼지,  저녁이 없는 삶, 가부장 제도 아래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 물질과 소유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사회 이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10대에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는 것을 배웠고, 이는 대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해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의 행복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어려운 관문을 거쳐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대한민국 직장인 여성에게는 육아와 커리어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암묵적인 강요까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 여성이 될 예정이었다.


'육아휴직 규정대로 하고 오면 책상이 없어지는 건 다반사야'. '저녁이 있는 삶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누려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앞둔 나는 사실 많이 두려웠다. 학창 시절 분명 인간은 개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체를 구성했다고 배웠는데, 이 공동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보다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아빠도 그랬다. 2011년 어느 날, 한 순간에 삶은 아빠에게서 내일을 앗아가 버렸지만... 나는 아빠가 한순간에 당신의 내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안다.


죽음은 곁에 있었다. 죽음을 인지하니 삶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삶과,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삶이란 게 뭘까? 대입, 스펙, 취업... 앞만 보며 달려오면 행복에 닿을 줄 알았는데, 행복을 차치하고, 내 삶이 없잖아?

이 구조에 속하는 순간 내 삶과 행복을 빼앗길 것만 같아. 그래, 헬조선을 탈출하자.


처음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내게 묻기 시작했다. 내 안전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기 위해.  방황과 두려움의 한가운데서 답을 찾던 중, 우연히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 만났. 당시 내게 조국은 '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면 살고 싶은 곳은 어딜까? 책은 본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며, 행복은 개개인이 개성과 자유의지를 발휘해 원하는 것에 도전하고 성취할  있을  가능하다 주장했고 나는 충분히 공감했. 

맞아, 인간의 욕구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현된다고 배웠지.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

시험을 치고 머릿속에서 휘발되었을 뿐 학교에서 분명 배운 것이었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 인간으로서 우리의 지향점은 같았다. 행복과 결국 자기실현. 하지만 이 행복은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래서 국가는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정된 자원을 정의롭게 분배하여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우리는 구조의 거대함 앞에 취약했고 나는 작아졌다. 개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발현할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 좋은 국가란 그런 곳이었다.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할까? 개인의 행복할 권리를 위한 사회의 역할.  내 행복을 위해 시작된 이기적인 질문은  ‘좋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좀 더 깊이 고민하게 했다.






스웨덴이 N극이었다면 나는 S극이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네덜란드-스위스-스웨덴-뉴질랜드-캐나다-오스트리아’.  나라들은 매년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 개발 해법 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 상위 10 국가이다. 매년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하지만 흥미롭게도 2012 발간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북유럽 국가들은 줄곧 상위에 랭크한다. 높은 사회적 신뢰도, 우수한 복지제도와 자연환경, 저녁이 있는 삶, 양성평등, 지속가능성 등 5개의 북유럽 국가는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북유럽 가면 행복해지나? 왜 매년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뽑힐까? 양성평등, 지속가능성 다 뜬구름 잡는 소리 아닌가?

막연히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은  안에서 켜져 갔다. 백문이불여일견. 인간적인 삶의 근간을 이루는 환경을 국가가 나서 제공하는 곳. 행복해지고 싶었던 나는 나만의 유토피아였던 북유럽으로의 이주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계획했다. 아무도 모르게.


이주를 위해 모아 놓은 돈도 없던 내가 가장 빠르고 합법적이며, 큰돈을 들이지 않고 북유럽에   있던 방법은 바로 유학이었다.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2015년 스웨덴 유학 장학금 기회를 발견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생각했다.  특히, 다섯 개의 북유럽 국가  가장 많은 인구 수와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대기업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나라와 묘하게 닮은   않은 진보적인 이미지의 스웨덴은 탐구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인턴을 그만두고 3개월간 치열하게 유학 준비를 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헬조선 탈출, 행복을 찾아서. 그리고 마침내 2016년, 나는 스웨덴에서 2 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아빠 육아 휴직제도를 만든 나라다(출처: Imagebank Sweden)

그리고 2년이 지났다. 나는 행복을 찾았을까? 지난 2년   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북유럽 행복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경험한 스웨덴은 내가 꿈꾼 북유럽 복지국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 존재로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성별, 나이, 집안, 소득 수준 등 내게 주어진 외부적인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만큼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인간다움’과 ‘평등’은 스웨덴 사회의 중요한 가치였고, 국가는 나서서 국민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자 노력해왔다. 내가 삶에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잘 지켜내고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헬조선을 기껏 탈출했는데 돌연 귀국을 결심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긴 겨울 날씨와 가족과의 시간과 같은 개인적인 삶의 우선순위 때문에 나는 한국행을 택했다. 스웨덴에서의 2년도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스웨덴이 가르쳐준 행복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웨덴에 오기 전 나는 스웨덴에 살아야만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에 살기 때문에만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며, 가족, 환경, 휴식 등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기에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웨덴에서 비로소 나는 파랑새를 찾았다. 파랑새는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삶에서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며 살아야지'

스웨덴을 떠나는 마지막 날, 스웨덴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소리 내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마음에 단단히 새기고 또 새겨 잊지 않게끔. 2년 전 부정하고, 도피하고, 증오하기만 했던 한국 사회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두려움을 내려놓는 순간, 비행기도 어느새 나를 한국땅에 내려놓았다. 내가 꿈꿨던 사회 스웨덴에서 내가 삶에서 놓치지 않고 싶은 것들을 명확히 깨달은 덕에, 2년 전 한국에서의 삶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나는 2년 후 희망을 품고 돌아왔다. 희망은 거창하기보다 사소한 것에 깃들어 있다.



우메오에서의 첫날,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다짐했던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나는 내가 상상했던 내가 되고 있나? 유학  나는 어떻게 삶을 대하고 있나?


'도희야, 한결 여유로워졌어'.


늘 시간에 쫓겨 뛰어다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해하던 내게 가족과 친구들은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은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다. 무엇보다 나이, 성별, 학력 등 나를 규정하는 사회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게 된 것은 가장 긍정적인 변화다. 스웨덴에서는 그 누구도 나이, 여자, 학력 등의 조건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사회적 통념에 규정당하지도, 구속받지도  않은 나는 비로소  내 욕구와 마음의 소리에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사회 제도, 문화, 기후, 자연환경 등 대한민국과 여러 방면에서 너무 다른 세계인 대척점 스웨덴. 그곳에 살아본  이후 내 행복의 과녁으로 향하는 화살은 더욱 또렷하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길고 긴 20대의 방황과 질문 끝에 떠난 스웨덴에서의 2년은 한국에서의 희망을 버렸던 내가 희망을 싹 틔운 시간이다.  스웨덴 역시 유토피아 아니었지만, 내가 스웨덴에서 배운 것들은 나만의 유토피아를 가꾸기 위한 씨앗이 되었다. 이를 글로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하는 지금, 나의 부족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각자의 파랑새를 찾길 바라며.


나는 비로소 20대의 끝자락에서, 내 마음의 파랑새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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