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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r 16. 2020

알아차림과 소확행

나는 늘 불안에 휩싸여 살았다. 불안은 없애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것임을 몰랐고, 나의 행복은 내가 어디 사는지보다 내 마음의 평정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행복을 위해 내 마음과 행동을 다스리기보다 외부의 환경에만 온 신경을 쏟다 보니, 불안함이 더 가중되곤 했다. 그렇게 지난 20대를 보냈다.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까?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어떤 직업을 구해야 하지?  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마음은 늘 미래에 머물렀던 지난 20대. 고백건대 졸업 후 떠난 스웨덴 유학은 도피와 같았다. 한국에서 내가 짊어지게 된 모든 경제적, 사회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발버둥. 행복한 복지국가 스웨덴으로 가면 내 삶도 자동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해질 줄 알았던 순진한 20대였다.


어디에 살든 삶에서 어떠한 노력도 없이 주어지는 게 어디 있을까? 스웨덴으로 갔다고 해서 내 삶이 안정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의 삶도 치열했다. 다만 그곳 사람들은 충분히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데 나는 그곳에서도 미래를 살았다. 26년 간 늘 미래를 위해 살아온 생존 패치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 한국으로 돌아갈지 스웨덴에 남을지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압도되어 밤잠을 설치곤 했다. 신도 아닌 내가 온갖 경우의 수를 그려가며 미래를 예측하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두고 좋고 나쁨, 안정과 불안정, 행복과 불행을 너무나도 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그리고 2년 후 렇게 떠나고 싶었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며.


그리고 다시 2년 여가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웨덴에서 돌아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나는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정된 직업도, 모아 놓은 돈도, 미래를 함께 그리는 사람도 없는 불안정함 투성이지만 이제는 막연히 상황을 걱정하고 외면하기보다 상황을 알아차리고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과 충만함은 '나의 몸과 마음의 욕구를 잘 알아차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삶'에서 피어올랐다. 


본질적인 행복은 남과 비교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불평하는데서 오는 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어진 모든 인연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마음과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다.


요즘의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10분이라도 명상을 하고, 누운 자리에서 한 문단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예전의 나였다면 바쁜 아침에 이 20여 분도 아까워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하러 달려갔을 텐데... 명상을 아직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아침에 갖는 나만의 20분이 내 감정과 상황을 알아차리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샤워를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아침을 시작하며 생각나는 사람에게 카카오톡을 보내고 마음을 표현한다. 이 사소한 모든 게 행복이다. 항상 바쁜 삶에 쫓겨 요리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매일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싸다니고, 커피는 사 마시기보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꼭 내려 먹는다. 스웨덴에서 요리하는 행복을 배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소비하는 습관을 줄이다 보니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풍족해진다. 대신 좋아하는 사람들과 1주일에 한두 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는 일이 큰 낙이 되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늘 내가 하는 일에 내 행복이 좌우되던 과거와 달리, 직업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일의 성격을 탐구하기 앞서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니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분명해졌다. 직관이다.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도 줄었다. 아직 안정된 직업은 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내게 맞는 일을 계속 찾고, 도전하고, 거절당하고 또 도전할 뿐이다.


과거의 나는 항상 미래를 계획하곤 했는데, 방향성은 가지되 더 이상 미래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내가 계획을 하기에는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며, 계획한 대로만 인생이 펼쳐진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어쩌면 현재 내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이끄는 신의 목소리일지도.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엄마는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다'고 했다.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니까.


매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지키고, 알아차림을 수행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인생에서 나만의 행복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에 더욱 자세히 귀를 기울이도록 해주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한 인터뷰에서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영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도 동의했다. 내가 타인을 넘어온 우주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 때문에 내 마음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알아차리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내 감정을 관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연결고리가 조화로움을 향할 때 내 행복도 증진될 테니까.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내 마음이 느끼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챙기고 주변 사람과 나누는 일뿐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결국 우리의 행복도 연결되어 있다.상대와 내 에너지를 나누고, 미래가 아닌 지금에 머물자 오늘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찼다. 


내일도 나는 소확행 기차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행복, 좋아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산에 간 것(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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