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는 겨울 냄새가 나는 것 같다가도 한낮에는 여지없이 그늘을 찾게 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추워서 입을 못 대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더워서 입을 못 대는.
나무에 달린 영광스러운 낙엽들보다 바닥을 뒹구는 처량한 낙엽들이 더욱 많은.
뜨거웠던 여름과 차디찰 겨울 사이 추락의 가을 11월.
‘사이’가 가진 그 애매함에 가슴 한편 씁쓸해지지만, 희미한 특징 그대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줘서 여름과 겨울이 서로 불만이 없는가 보다. 한낮에는 이쪽에서 뜨거웠던 마음을 어스러이 달래주고, 새벽에는 저쪽에서 힘차게 불어오는 찬 바람을 북돋느라 이곳저곳의 모든 미움을 받는 네가 오늘따라 부럽고도 참 멋지다.
어쩌면 허구한 날 애매하다고 양쪽에서 구박받는 네가 사실 가장 강직한 게 아닐까. 이쪽의 말에도 저쪽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네가 가장 넓어 보인다.
항상 짧게만 느껴졌던 너의 시간이 새삼 두꺼워 보이는 건 내가 너를 유심히 바라봤기 때문일까, 네가 나를 유심히 바라봤기 때문일까.
뜨거웠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조용히 다짐해본다. ‘사이’가 되자. 이쪽의 섭섭함을 살살 풀어주고, 저쪽의 속상함을 살살 달래주는 여름과 겨울 사이 추락의 가을이 되자. 누구에게도 썩 환영받지 못하겠지마는 묵묵히 그 사이에서 우리의 조화를 이루자. 처량하게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들은 분명 퇴비가 되어 또 다른 생명을 속삭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