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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un 16. 2022

마당이 있는 삶, 복숭아나무

마당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 엄마가 그랬다.

"유실수를 심어. 그게 은근히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난 꽃 좋아. 예쁜 꽃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따먹겠다고 그런 걸 심어. 사 먹는 게 훨씬 맛있어!"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더니, 엄마 말이 맞았다. 사 먹는 게 훨씬 맛있을지는 몰라도  내 손으로 키워 결실을 맺은 열매를 딴다는 감흥은 엄청난 것이었다. 맛없으면 어떠랴, 과실주 좋아하는 내 남편 술 담가주면 되는데!

그렇게 해서 체리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신비 복숭아나무, 샤인 머스캣, 거봉, 머루, 다래, 오디, 산딸기, 딸기, 복분자, 자두, 사과, 미니사과, 배, 보리수 등등을 심고 꽃은 꽃대로 심어댔으니 마당의 여백이란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마당의 여백과 바꾼 수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그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 어찌나 단호박이었던지는 이제 와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 집에 온 지 이년이 된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달렸다.

주변 일대가 모두 복숭아 밭이라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꽃이 너무 예뻐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심은 아이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웃기다. 복숭아라면 이웃 어르신들이 나눠주시는 것들로도 충분해 거의 사 먹을 일이 없는데, 내 마당에서 키우는 복숭아나무에 열매가 달리니 한알 한 알이 너무 소중했다.

크고 맛있는 복숭아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열매당 거리 30cm 간격으로 솎아 주어야 하고, 열매 하나당 복숭아 잎 25장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촘촘히 매달린 열매를 떨궈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욕심부리다가 기어이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집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움푹 파인 분지 형태의 땅에 위치해있어 바람이 무척 센 편이다. 한여름에도 저녁만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에어컨을 틀고 잔 날이 없는데, 어제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복숭아 가지가 꺾여버린 것이다. 열매가 제일 많이 달린 가지가 무거움을 견뎌내지 못한 탓이었다. 흐엉흐엉


꽃이 예뻐 가까이 보려고 심었다더니!
주변이 다 복숭아 밭이라 차라리 사 먹는 게 낫다더니!
열매 솎아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더니!
바람 많이 부는 마당에서 멀쩡한 가지 꺾이는 거 수없이 봤다더니!
얇은 가지에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있어 걱정하는 척하더니!



욕심에 눈이 뒤집히면 다 알고 있어도 아는 게 아니고, 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은가 보다.

내 욕심에 복숭아 열매 8개를 잃었다.

작은 것에 욕심부리다 더 큰 것을 잃은 그날, 다른 가지의 복숭아를 솎아주었다.  



내 욕심으로 부러져버린 복숭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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