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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바꾸는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

김지수의 위대한 대화

by 초희
Q. 언론이 갈등의 중재보다 생산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어느 때보다 거셉니다. 저 또한 글을 쓰는 기자이기에 '훌륭한 기사는 양극의 갈등이 아니라 복잡한 이야기에서 나올 때가 더 많다'는 당신의 통찰이 반가웠어요. 독자들이 복잡성을 반긴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네. 저는 전적으로 확신해요. 복잡함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능력을 언론은 과소평가했어요. 입체적인 앵글의 뉴스는 신선하고 놀랍고 더 진실해요. 뉴스가 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뉴스보다 더 복잡 미묘한 허구의 TV쇼를 소비하고 있지요.
저는 묻고 싶어요. 저널리즘은 현실 세계에서 그러한 복잡성을 포착할 수는 없는 걸까요? 모든 갈등이 다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복잡한데 말이죠.

Q. 혹 그런 입체적 르포르타주로 정치 진영 간의 양자 구도를 완화할 수는 없었나요?

A. 기자로서 저는 정치 양극화를 여러 방식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기사를 써도 누구도 생각을 바꾸지 않더군요. 모든 문제는 진영이라는 색안경을 투과했어요. 양자 구도는 뿌리가 깊어요. 영화 <혹성탈출> 촬영장에서도 침팬지와 고릴라를 연기한 배우들은 끼리끼리 점심을 먹는 걸 편안해했다죠. 하지만 선택이 복잡해지면 이분법은 힘을 잃을 수 있어요. 국민투표도 '예, 아니요' 말고 '무의미하다부터 위험하다까지' 다양한 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정당이 다양한 이슈에 따라 동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편과 상대편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 갈등이 일어나도 건전하게 관리할 수 있죠.
일례로 <타임>에서 일할 때 저를 포함한 작가 집단은 글을 다듬는 편집자들을 무시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그들의 일을 우리가 대신하게 되면서 그 어려움을 알게 됐어요. 역할을 바꿔보니 진영 구분이 모호해지더군요.

- 241~242쪽
김지수의 '위대한 대화'라는 인터뷰집에서 아만다 리플리 저널리스트 인터뷰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세요'에서


요즘 우리는 복잡한 이야기 하기를 꺼리는 것 같아요. 정치 이야기는 민감해서,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는 삶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는 너 나의 사정이 너무나 다른다는 이유로 피해 버리죠. 그런 깊은 이야기들이 우리 내면에 꽁꽁 감춰 놓은 생각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에 대한 갈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일상에서 다루지 못하는 어렵고도 심층적인 주제나 복잡한 연구 담론을 다루는 콘텐츠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거든요. 새로운 시즌이 연이어 나오면서 꾸준히 인기를 모았던 '알쓸신잡'을 일례로 들 수 있겠네요.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일상에서는 꺼리고 피하게 되는 걸까요? 본래 사람이란 게 자신이 익숙한 것, 편안한 것에 이끌리도록 설계되어 있잖아요. 원래도 본능적으로 그런 존재이니 자신만의 안정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유에 몸을 사리게 될 수밖에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알고리즘에만 귀 기울이곤 하죠. 상대의 알고리즘에는 눈꼽만치의 관심도 주려 하지 않아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선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 무리에는 무한정으로 선하지만,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무리에게는 더없이 잔인해 끔찍한 행동들도 서슴지 않는다는 거죠. 수천 년을 수놓고 있는 학살과 전쟁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그럼에도 희망을 바랄 수 있는 건, 우리에게는 타인의 이야기에 동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단 사실 때문이에요. 익숙지 않은 타인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이 없죠. 불편하고 꺼림칙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그럼에도 '나와는 달라'하고 단정하기보단 조금 더 알아보려, 들어보려 결심해 볼 때 우리 세상에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요. 똑같이 수천 년을 수놓고 있는 사랑의 역사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죠.


타인이라는 알쏭달쏭한 세계에 너 나 할 것 없이 흠뻑 취해 보는 세상이 오게 되면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까요? 우리 모두 복잡한 가면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결국 저마다의 복잡한 삶을 살아 내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해와 인정을 받고 싶은 거잖아요.


조금은 지는 것 같아도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하루가 되어 보자고, 오늘 읽은 책의 문장을 통해 힘을 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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