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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제주처럼

by 초희

바다는 생각보다도 더 차가웠다. 다리를 내딛을 때마다 그 사이로 일렁이는 찬 이물감에 온신경이 쭈뼛 섰다. 암초로 덮인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나갈 때마다 물결은 점점 몸의 위쪽으로 타고 올라왔다. 몇 분을 한참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 온몸을 수면 아래로 푹 맡겼다. 바다와 어렵게 한 몸이 된 후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새 목 주위까지 출렁이는 파도를 느끼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찾았다. 각자의 리듬으로 첨벙이며 이곳저곳에 잔물결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호루라기 소리를 내며 한껏 웃고 있다.

이런 세상도 있다. 새삼스러웠다. 그 무엇도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 새파란 풍경이. 원하는 만큼 시야를 저 멀리에 둘 수 있었다. 먼 곳에서 하늘과 바다는 서로가 서로인 듯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그 경계를 나누는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선이 없었다면 아마 온통 하나라고 느껴질 만큼. 그렇게 열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정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바다는 참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상아색에 가까운 연한 파랑부터 먹구름처럼 짙은 파랑까지 세상의 파랑이란 파랑은 모두 모아 놓은 듯한 팔레트처럼 알록달록했다. 종종걸음으로 떠다니며 두 눈에 담은 자연은 말 그대로 경이로웠다.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시선을 멀리 둔 적이 참 오래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늘 위로 치솟은 건물들 아래로 사람들이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빼곡한 거리들. 그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 머릿속은 한없이 바빴다. 무엇을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제 몸을 먹일 음식을 해 내고, 치우고, 30분가량을 뛰고 와서는 책상에 앉으면 축 늘어진 몸은 이미 어둑해진 하늘처럼 뉘엿뉘엿 저물기를 절실하게 바랐다. 무거운 피로가 머리마저 잠식해 오면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주에 하나씩은 쇼츠 영상 만들기로 했잖아. 일요일까진 연재글을 발행해야 하니까 이만큼은 써야지.

밥을 먹거나 멍을 때리는 시간마저도 종종 아깝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경제 방송을 크게 틀어놨다. 금리와 환율은 어떻다더라, 누구누구 대통령은 오늘은 뭘 어쨌다더라, 집값은 역시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들을 캐치하려 애쓰며 다시 마음속에선 해야 할 일들을 요목조목 리스트업 했다. 월급이 이 정도, 한 달에 이만큼씩 저금하고 투자하면, 연말엔 이 정도는 불어나 있으려나. 이런 집을 사면 한 달에 나가는 이자는 얼마. 그렇게 한참을 손으로 이런저런 수를 꼽아 보다 보면 앞으로의 생이 참 아득했다. 20평, 운이 좋으면 30평 남짓한 공간에 수년을 저당 잡혀 살아나갈 그 무수한 시간들이. 그 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회색빛 우람한 건물들 사이에서 불나방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마침내 수명을 다해 시들어 가겠지.


그게 정말 맞는 걸까. 정녕 그런 길밖에 없는 것일까. 1년을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떠나온 제주에서 이따금 골똘히 생각했다. 존재만으로도 찬란한, 수백수천의 세월을 그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는 푸른 대지와 산, 바다들을 보며. 시선으로 몸으로 한동안을 온통 점유해도 괜찮을 너른 공간들에 상쾌한 해방감을 느끼며.

한참을 고삐 풀린 생각들에 맥없이 끌려 다니다가 2일 차 즈음엔 마음을 다잡았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봐서 그런 걸 거야. 여행이란 무엇이야. 무엇이든 누리고 소비할 수 있는 인생에 몇 없을 시한부 기간이 아닌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겠지.

그때부턴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일하다 홀연히 제주로 떠나와 벌써 6년이나 살고 있다며 선한 미소를 짓던 리조트 프런트 직원, 안 망하고 11년을 버텼다는 사실을 '경축'자를 붙인 종이에 써서 입구에 걸어 둔 책방 사장님, 반팔티 2장을 샀더니 흔쾌히 비즈 반지를 두 개씩이나 얹어 주던 호쾌한 빈티지숍 점원, 구멍이 숭숭 난 제주의 까만 돌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산멍'을 하던 노부부. 그들의 얼굴엔 무언가 공통점이 있었다. 서울에서 흔히 볼 법한 미간의 주름은 물론, 뭔가 무심하고 영혼 없는 표정들이 없달까. 사람은 자기 좋은 대로만 보고 싶어 한다고,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흡수한다는 확증편향이란 본능이 척척 발휘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꿈같던 시간들은 어김없이 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땐 너무도 싫어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래도 어째, 속도 모르는 비행기는 너른 바다를 훌쩍 건너 이미 내륙 상공을 무심히 날고 있었다. 아래로 가득 보이는 창백한 표지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 하늘을 난지 40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왔구나, 실감이 들었다.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는 집채들 사이로 다시 난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떨어진다. 또다시 정처 없이 바쁜 생의 재시작점이었다.

언젠가 제주를 다시 만나게 될 날, 그때의 난 무슨 생각으로 다시 너른 자연을 보게 될까. 그때는 이곳의 푸르른 대지와 산, 바다처럼 내 삶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롭고 찬란할 수 있다는 생의 비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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