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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털 박힌 영웅 곽재우의 새드엔딩

by 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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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강토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명나라 덕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일이 없다. 이는 내가 직접 겪은 사실이다." - 선조실록

7년 동안이나 이어진 전쟁, 임진왜란이 끝난 후 당대 임금이었던 선조가 뱉은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일이 없다'니, 정말이지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닐까요.

선조의 이러한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피 튀기는 전장에서 제 목숨을 다해 싸운 수많은 장수들이 2등 공신에 그쳤던 겁니다.


그럼 1등 공신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갔을까요?

선조가 한양을 떠나 북쪽으로 먼 피난길을 떠날 때

그 곁을 지켰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등은 고사하고, 공신 명단에 이름조차 못 올린 인물이 있습니다.

붉은 철릭을 입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곳마다

일본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의 홍의장군 곽재우,

그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조선이 세워진 지 2백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위급한 전쟁이 일어나자 신하들은 모두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임금 역시 지방을 돌보지 않고 있다.
시골에 묻힌 몸이라는 핑계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전국에 나라를 지킬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돌게 될 것이다." - 난중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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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전쟁이 일어났단 소식을 들은 곽재우는

누구보다 먼저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가면서까지

어떻게든 군사를 모으려 온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최초의 의병장일 뿐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조라 할 만한 인물이었던 셈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무예 실력도 출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활쏘기, 말타기에 열심이었던 그는

전장을 마치 자신을 위한 무대처럼 누볐습니다.


전쟁이 막 터졌을 때 조선의 군사들은 관군은 물론, 의병까지도

사실상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난생처음 마주한 일본군의 조총은

겁에 질린 그들을 더 꼼짝 못 하게 할 만큼

압도적인 위력을 드러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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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타인의 삶들을 들여다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 삶의 조각들을 큐레이팅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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