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의 꿈이 남긴 상흔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님과 밥을 먹고 여느 때처럼 학교 주변을 산책하던 때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 그날도 어수선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데 멈칫하는 기류가 느껴졌다. 김양 집이 월세라고? 그 어떤 말에도 코멘트를 하는 법이 없는 분인데, 의아했지만 곧 경쾌하게 대답했다. 월세가 얼마인지까지도 천진하게 설명을 덧붙이면서. 2년에 한 번씩은 꼭 이사를 다녔던, 월세를 전전하던 가정에서 자라온 난 그때까지만 해도 월세와 전세의 차이조차 알지 못했다. 월세가 어떤 결핍을 상징할 수 있는 단어라는 사실도.
월세와 전세의 차이를 알게 된 건 본가를 떠나 나만의 집을 찾아볼 때였다. 수중의 돈은 고작 400만원. 이 돈으로 대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 집 저런 집을 둘러보며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도 천운이 따랐다. 덜컥 청년주택에 당첨된 것이다. 용산에 직장을 둔 덕에 얻게 된 귀한 보금자리. 임대료는 5만원도 넘지 않고 4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역세권인,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거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인근 부동산 유리창에 붙은 아파트 가격을 훑어보며 내 평생 용산에 살게 될 일은 지금 말곤 없겠구나, 싶었다. 집 차창 밖으로 얼핏 보이는 한강, 문 밖을 조금만 나서면 넘쳐나는 다채로운 인프라를 누리며 차차 알게 된 것 같다. 특정 공간을 점유한단 게 얼마나 큰 권력인지를. 어디 사세요? 가끔 받게 되는 질문에 용산이라 답하는 목소리엔 나도 모르게 묘한 우월감이 서렸다. 청년주택에 산단 사실을 구태여 덧붙이지 않으면 질문을 던진 사람들도 묘한 동경의 눈빛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맘편히 환상에만 젖어 있을 순 없었다. 정해진 임대기간이 끝나면 30여년을 그래 온 것처럼 다시 난 떠날 짐을 꾸려야겠지. 지긋지긋한 떠돌이 삶을 끝내기 위해선 집을 사야만 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집집마다 붙어 있는 가격표는 늘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한 달에 100만원씩 모은다 해도, 열두 달이면 1200만원인데. 1억은 열두 달이 열 번이나 지나야 하는데. 손가락으로 셈을 해본 후에는 그래, 그냥 분수에 맞게 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서울 곳곳에 눌어붙어 있는 집들, 겹겹이 열을 맞춰 늘어선 저기 저 반듯한 집들 가운데 지금도 나중에도 내 집은 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손에 쥘 수 없을텐데,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배 아파하기보단 지금 누릴 수 있는 걸 누리자며, 당장에 움켜쥘 수 있는 행복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인문학을 전공한 탓에 가뜩이나 월급도 조촐한데, 하루살이처럼 돈을 써대니 지갑은 밑 빠진 독같았다. 몇 살엔 으레 얼마,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말들, 그 어지러운 아우성 속에서 늘 도망만 다녔다. 언제부터였을까. 무 자르듯이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게 된 게. 오십이 훌쩍 넘어서도 집주인에 절절 매는 부모의 모습이 꼭 내 미래가 될 것만 같아서였을까. 늘상 돈에 쫓겨 다니면서도 그 돈이라는 게 뭔지 들여다볼 생각은 지금껏 하지 못했단 생각이 문득 뇌리에 스쳤던 것 같다. 그 무렵부터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자본주의, 투자, 돈을 키워드로 한 책들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관성의 알을 어렵사리 깨고 들어선 새로운 세계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티끌을 그러모아 태산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자본주의란 체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를 조금씩 알게 됐다. 자본과 가난, 극명한 양측을 그저 운명으로만 믿던 시간들은 이제 저편으로 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경제뉴스를 들으며 세계의 동향을 나름대로 유추해 보다 보니 내가 가진 티끌들에도 점차 살이 붙기 시작했다. 되는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시간들이었다. 시간은 누구나에게 공평하단 말은 복리의 마법 속에선 성립하지 않았다. 시간이 쌓일수록 누구의 돈은 곱절이 되고 누구의 돈은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형체를 잃고 녹아 버렸다. 불어가는 잔고를 보며 기쁘기도 했지만, 이토록 자명한 숫자의 원리를 깨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했단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돈은 탐욕만이 아닌 자유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단 걸, 이제는 너무 잘 알지만 왜 그 자유의 무게를 개개인의 어깨에 지우는 걸까. 자그마치 12년, 의무로 할당된 학교 교육 시간엔 왜 아무도 월세와 전세의 차이 등 자본의 흐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꾸역꾸역 모으고 굴린 돈을 짝꿍과 합쳐 보니 그럴듯한 숫자가 완성됐다. 그 수의 범위에 맞춰 몇 개월을 우리는 우리의 몸을 뉘일 공간을 찾아 다녔다. 가끔 짝꿍은 평생을 한 공간에 저당 잡혀 사는 게 과연 현명한 걸까 의문을 표하기도 했지만 자본의 논리에 익숙해진 난 한마디로 그 반론을 일축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부동의 진리는 부동산밖에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론 찝찝했다. 엄청난 확신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그동안 봐온 경제 유튜버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는 건 아닐까, 틈이 날 때마다 스스로를 검열해 보곤 했다. 결정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되뇌었다. 욕망의 흐름에 끝도 없이 몸과 마음을 내맡기다 보면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무의식 속 어떤 일말의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딜레마는 곧 눈앞에 펼쳐졌다. 선택지가 두 집으로 좁혀졌을 때였다. 하나는 역세권 구축, 다른 하나는 입지는 조금 떨어지지만 지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축. 마음은 이미 잔뜩 신축으로 기울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는 날 중심에 둔다면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곧 주위의 말말말에 맥없이 휘둘렸다. 시간이 지나면 신축도 곧 구축이 된다. 아파트는 깔고 앉아 있는 땅이 중요한 거다. 내가 사고 싶은 집이 아니라 남이 사고 싶은 집을 사야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다. 언제나 나 자신이 돼야 한단 결심이 무색하게도, 결국 난 본능을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과감히 내 길을 걸어오게 만들어 준, 나만의 굳건한 자아를 자꾸만 배신하게 된 것만 같아 어쩐지 개운치가 못했다.
그래도 잘한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세월이 지나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될 거라고.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스스로가 참 장할 거라고. 뇌는 재빠르게 확증편향의 회로를 돌렸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서명한 후의 세상은 돈 공부를 시작할 때보다도 더더욱 새로웠다. 세금 규제나 금리 변동 소식에 유난스레 귀를 기울이고, 그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 내 이해관계를 곧바로 셈해 본다. 문득 임장을 다닌 아파트 단지들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다양한 현수막들이 생각났다. 모든 현수막엔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잔뜩 수놓아 있었다. 그 현수막에 쓰인 매서운 말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될 날도 머지않은 걸까.
좋으나 싫으나 이런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 생각으로 나를 밀어낸 결정들이 이처럼 하나둘 쌓이다 보면 난 어떻게 변하게 될까.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잃지 않게 될까. 내가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에 골몰하기보다 어떤 삶이 내게 가치로울까를 계속해서 고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과연 난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