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와르가 일본을 향해 북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몰래 기뻐했다. 여행을 취소할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76세의 나이, 관절염이 심해져 오래 걷지 못하는 엄마에겐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착한 딸이라면 안타깝고 속상해 할 일이다. 은근히라도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단 둘이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수다를 즐기지 않는데 반해, 엄마는 나이가 들며 점점 말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없으면 엄마의 수다 파트너를 온종일 고스란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통역사, 운전기사, 가이드 역할에는 퇴근 시간이 있겠지만, 한 많은 70대 여성의 말 벗이 되어주는 일은 눈을 뜨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아빠는 한사코 일본 여행을 거부하셨다.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로 시국이 어지러운데, 일본에 가서 돈을 쓰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라 하셨다. 나는 ‘좀 그렇긴 하죠.’ 하며 대충 계획을 취소하고, 적당한 국내로 행선지를 바꿀 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애국자 양반은 한국을 지키게 내버려 두고 이 참에 여자들끼리 온천 여행이나 하자고 했다. 어차피 아빠는 온천을 싫어하니 잘 됐지 않냐며.
온천 여행이라니. 그것은 곧 호텔 욕조에 몸을 담그고 고요함 속에 머물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마저 엄마에게 헌납해야 함을 뜻한다. 황급히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 벗을 수배 해야 했다. 이모는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엄마 친구 영건 아줌마는 손주를 대신 돌봐 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여수 숙모는 여권이 없단다. 그러던 차에 태풍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여행을 번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다음에 가지 뭐”라고 하자 내 입에서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다음 기회가 꼭 온다는 보장이 있어? 매번 미루다가 아무것도 못 했잖아.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다닙시다!”
인간의 본심은 이렇듯 생각을 넘어 불쑥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 오장육부의 느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기적인 논리와 게으른 육신 탓에 종종 배은망덕한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마음이 따뜻한 효녀였던 것이다.
마음을 바꾸자 태풍의 경로도 바뀌었다. 짐을 싸며 다짐했다. ‘백 퍼센트 엄마를 위한 여행을 하자. 매 순간에 온전히 머물며 엄마의 말에 귀 기울이자. 어린 시절, 끊임없이 재잘대던 나의 이야기에 엄마가 열심히 호응해 주었듯, 이제 내가 엄마의 이야기에 맞장구쳐 드릴 차례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으니, 엄마와의 시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엄마와의 여행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끝.
이러면 좋았겠지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작정하고 다정해진 딸과 모처럼의 해외여행에 행복감이 고조된 엄마는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졌다. ‘네 아빠는 어쩌면 그러냐?’로 시작되는 수십 년 묵은 레퍼토리는 물론, ‘그동안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세일 알림 문자를 받지 못 한 이유’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는가 하면, ‘성당의 세실리아 자매님이 허리를 다쳐 세 딸들이 번갈아 간병 중인데 첫 째 딸은 성격이 이렇고, 둘째 딸은 저렇다더라...’하는 캐릭터 묘사까지… 엄마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몰랐다.
젊은 시절 엄마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헤아리지 않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퍼붓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이 슬펐지만 내 효심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둘째 날 저녁, 어린 시절 아이에게 했듯 엄마의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유튜브 앱을 열어 박막례 할머니의 브이로그를 틀어드렸다. 나는 짧은 한숨을 쉬며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한 줄도 읽지 못 한 책을 집어 들고 막 책장을 넘기려는데 엄마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이는 어쩜 이렇게 말을 잘해. 성격이 활발한 게 우리 구역장 닮았네. 우리 반은 구역장을 참 잘 뽑았어. 얼마나 부지런한지. 어디 성당 일이 한두 가지야? ”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았다. 머쓱해진 엄마는 동영상을 몇 초간 더 보다가 먼저 자겠다며 자리에 누웠다.
책장을 꽤 넘겼지만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불을 끄고 엄마 옆으로 가서 가만히 누웠다. ‘그 세 코를 고네. 참 지긋지긋하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엄마 얼굴을 봤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이 그리워질 언젠가를 떠올린다. 명치 언저리가 묵직해졌다.
2023년 엄마와 쿠마모토 여행 중 썼던 글
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