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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Oct 14. 2024

포르쉐 대신, 웃는 얼굴 ^^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어."


라는 나의 말에, 남편의 눈빛에 실망의 기색이 감돌았다.

"그럼 돈 벌어서 포르쉐 사주겠다는 말은 없던 일이 되는 거야? 리조트 짓겠다는 꿈은 사라진 거야? 퍼스트 클래스로 아들 축구 시합 구경 가겠다는 꿈도 꾸지 않을 거야?"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진심 어린 항의가 느껴졌다.

하긴, 내가 야심찬 얼굴로 ”꿈을 꾸고 불타는 열망을 가지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대. 우리 꿈 목록을 만들자!"라고 한 것이, 불과 일 년 전이다. "포르쉐 타고 싶어? 모델 명을 구체적으로 말해. 내가 사 줄게."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남편은 '좋아. 그런 자세!'하며 흐뭇하게 웃었지만, 정작 본인은 꿈 목록을 만들지도, 불타는 열망을 가지지도 않았다.

남편의 꿈은 그저 "가족들이 잘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옆에서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나와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흠… 슬쩍 묻어가겠다는 소리군.'

그의 소극적인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내가 성공할게. 내가 돈 많이 벌게. 당신은 옆에서 나를 도와줘. 사고만 안 쳐도 어디야. 시키는 것만 잘 해줘도 어디야.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일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내 마음이 변했다.

나도 남편처럼 살고 싶어졌다. 불타는 열망 대신 충분히 자고, 웃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속 편하게 살고 싶어졌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노력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남편은 부지런하지 않다. 하지만 축구와 목수 일을 할 때 만큼은 새벽 다섯시 반에 벌떡 일어난다. 돈과 무관하게 좋아하는 일들이다. 그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축구와 집 고치는 일에 할애하고, 나머지 시간은 빈둥빈둥 유튜브를 보거나 기타를 친다. 자기 계발 따위는 없다. 부러운 삶이다. 나뿐만 아니라, 평생 열심히 살며 어느 정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남편의 친구들도 그의 삶을 부러워한다.

어려운 일도 많았다. 경제적 곤궁에 힘든 날도 있었고,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도 했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남편은 하고 싶은 일들을 주로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축구를 했고, 개그콘서트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사는 내내 마음고생은 나만 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나만 쪼들리는 것 같고, 나만 불안한 것 같고, 나만 안달복달하는 것 같았다. 나의 불행을 함께 공유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의 편안한 태도를 닮아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고생이 디폴트 모드로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몸이 편안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나 큰 목표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한참 미치지 않는 현실을 불안해했다. 휴식해야 할 때에도 '지금 이러고 있을 땐가?'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맘 편히 쉬지 못했다.

나는 왜 고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휴식과 취미를 즐기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했을까?

왜 취미와 일은 별개여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세뇌되어 왔던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에.

"일과 놀이는 별개"라는 말에.

"부지런한 개미는 부자가 되고, 게으른 베짱이는 벌을 받는다."라는 말에.

그 말들이 나의 무의식에 안개처럼 깔려,

편안한 순간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노는 순간을 즐겁지 못하게 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하지 못 한 나에 대해

늘 죄책감과 부족한 느낌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한 자각이 점점 선명해질 무렵,

책 속의 한 문장이 응원하듯 내 앞에 나타났다.

"사람은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 론다 번 "위대한 시크릿"

성공학 책에선 말한다.

이미 가진 것처럼 행동하라고.

이미 다 이룬 것 같은 기분으로 살라고.

내가 꿈꾸는 것들을 이미 가졌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내가 누리고 싶은 행복은 어떤 무엇일까?

사실 포르쉐 자체가 꿈은 아니다. 포르쉐가 상징하는 것은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순자산 100억은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막연한 경제 규모이다. 퍼스트 클래스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귀하게 모시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을 '꿈을 이루면 얻고 싶은 무언가'로 두지 않고, 그냥 지금의 삶 속으로 들여놓으면 어떨까? 하기 싫은 일보다,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우고, 나와 주변 사람들을 대접하는데 후한 마음을 내고, 남편에겐 포르쉐 대신 상냥한 미소와 친절을 베풀며 산다면?

의식을 두면 확장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라고 한다. 소음에 의식을 두면, 삶이 소음으로 가득해지고, 아이의 웃음소리에 의식을 두면 삶이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아무 일 없음에 집중하면 삶이 점점 더 평화로워지고, 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 집중하면 삶이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삶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고생이 디폴트로 깔려 있는 나의 무의식 때문에.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내려놓기를 연습하고 싶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나만의 판단과 기대가 생길 때 마다, 알아차리는 연습. 삶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사실을 믿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연습. 맞서지 않고 물흐르듯 사는 연습.

그 마음이 가져다 줄 평화가 나에겐 필요하다.

속 편하게 사는 남편을 보며

그 마음의 힌트를 얻는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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