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놀기 위해 태어난 거 아닐까?”
레이지마마 중앙엔 큰 마당이 있다. 어른의 간섭 없이 뛰어 노는 아이들을 지켜 보며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개성이 뚜렷하다. 노는 방식도 다 다르다. 중간에 방해만 하지 않으면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에 몰입하기도 한다. 세 시간 동안 땅을 파고 흙을 쌓으며 노는 아이들이 있고, 바닥에 딱 붙어 꼬물꼬물 벌레를 쫓아다니는 아이도 있고, 종일 킥보드에서 내려오지 않는 아이도 있고,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 어마어마한 대작을 완성하는 아이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누구나 각자의 천재성을 가졌다는 확신이 든다. ‘마음껏 놀며 저대로 쭈욱 자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몇 시간 동안 몰입하는 무언가가 저 아이의 재능일 텐데. 천재성일 텐데. 가슴 뛰는 일일 텐데.'
요즘 엄마들은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아이가 꿈을 가졌으면 한다. 일찌감치 재능을 발견해 그쪽으로 조기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꾸 아이에게 묻는다.
'하고 싶은 게 뭐야? 꿈이 뭐야? 공부가 아니라도 괜찮아. 하지만 네가 뭘 하고 싶은 지는 알아야지.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렇게 빈둥빈둥 놀기만 하면 안 되지.'
내 생각에 아이의 재능을 파악하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빈둥빈둥 노는 시간에 뭘 하는지를 보면 된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는 게 문제 이긴 하지만, 내버려 둘 수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이가 자기의 길을 찾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한 가지씩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것을 성경에서는 탤런트, 불교에서는 다르마라고 부른다.
그 재능의 씨앗이 무엇인지 알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싹이 틀 때까지 가만히, 땅이 마르거나 너무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적당한 물(영양)과 햇빛(사랑)을 주면서…. 무슨 씨앗이 들었나? 언제 떡잎이 올라오나? 조바심을 내며 자꾸 땅을 파면 싹이 움트는 속도가 훨씬 늦어지기도 하고, 아예 움트지 못하기도 한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아이의 씨앗이 없다고 단정 짓고 (또는 그 씨앗은 쓸모가 없다고 단정 짓고) 그 자리에 모종을 사다 심는 부모들이다. 남들 눈에 화려한 꽃으로, 비싸게 팔릴 만한 과일나무로…
이 것은 아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 인생을 망치는 폭력이다. 부모의 불안함과 조바심이 많은 아이의 삶을 무기력하게, 뒤틀리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뻐근해진다.
리즈의 고요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