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춘은 원래 불안하다.

by 레이지마마

올해 대학 축구부에 입학한 아들에게 카톡이 왔다.

현직 축구 에이전트가 특강을 했다며, 녹음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보내왔다.


강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거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 대학 축구부 소속인 현재 상황에서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인구는 줄어드는 데 학교 축구부는 늘어난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군소 대학들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축구부를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희는 등록금을 내주는 역할로 대학 축구부에 온 것 일 수 있다. 이미 프로산하 유스 선수들, 탑 티어 선수들이 차고 넘친다. 대학 다음은 바로 사회인이다. 축구 선수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의 현재를 냉정하게 파악해 진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돌려 돌려 조심스럽게 표현했지만, 결국 이런 내용이 강의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리고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너희 학교는 떠오르는 팀이고, 감독님도 프로 출신이라 확실히 이점이 있다. 스카우터 들이 경기를 보러 오는 팀이 되고 있다. 예전엔 아예 없었는데, 최근엔 눈에 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선수들의 과거 이력이 아니다. 눈에 띄게 잘하는 특기가 있는가. 프로 팀에 데리고 가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한 방’이 있는가? 그것을 본다.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면 자신만의 ‘한 방’ - 주특기를 만들어라.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는 절망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강의 내용을 녹음해 엄마, 아빠에게 보낸 것인지 궁금했다.

카톡으로 강의를 듣고 난 소감을 물었다.

아들은 답이 없다.


부모로서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아무 말 않기로 했다.


다음 주에 집에 오면

따뜻한 밥이나 해 줘야지.



에세이는 이 정도로 끝내는 게 딱 좋다고

글 잘 쓰는 분들이 조언을 해 줬는데,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안 하고 끝내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병이 있다.

마저 써야겠다.


아들은 지금 스무 살이고, 나도 스무 살을 지나왔다. 갓 어른이 되어, 새 노트를 펼쳤을 때처럼 희망이 가득했던 시절, 잘 살아보고 싶은 의욕이 충만하던 시절, 부모로부터 독립해 진짜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이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그럴 땐 반드시 힘을 빼놓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내가 다 해 봤는데..."라고 말하는 자들. 바로 인생 선배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안 되는 이유를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이며, 너와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그들처럼 되기 어렵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대비하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말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오만이라고, 세상 물정 모르는 치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만과 치기야 말로 20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망해도 괜찮은 나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 모든 게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삶의 무기가 되는 나이.


덕분에 나는 엄청난 실패와 좌절과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하지만 또 그 덕분에 인생에 큰 불만은 없다. 재미있었고, 가슴 뛰는 순간도 많았다. 실패 속에도 성공이, 좌절 속에도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 자체가 인생임을, 적어도 나는 내 인생의 연출자이고, 주인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들에게, 먼저 걸은 사람들의 말을 (엄마 말조차도) 듣지 말라 하고 싶다. 들어야 할 것은 자기 마음의 소리뿐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질문을 던지고 섬세하게 귀 기울이고, 과감히 실천하며 살아가라고. 그게 가장 너답게, 후회 없이 사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 말조차 아들에게 전하지는 않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내 생각일 뿐.

그의 인생은 그의 것이니까.



리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들여지지 않는 아이의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