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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다섯 가지 유혹

by 힉엣눙크

“식어버린 커피는 그냥 버리기 아깝잖아. 그럴 때 나는 화분에 부어주지. 사람이 먹는 것이니 식물에게도 해롭지 않을 것이고 미량이긴 하지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유기물은 물론, 칼륨, 마그네슘, 인 등 무기물도 들어 있으니 당연히 좋지 않겠어? 안된다는 고정관념, 그럴 리가 없다는 선입견을 버려.”


식어버린 커피를 버리려다가 문득 그가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책상 옆에 있던 화분에 부어주었다. 이후 커피가 남으면 화분에 부어주곤 했다. 활력이 넘쳐야 할 식물의 잎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실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전, 남은 커피를 부어주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옆 동료가 내게 물었다. "아니, 식물에 커피를 줘도 돼요?"


”사람이 먹는 건데 뭐 어때? 소량이긴 하지만 영양분도 있고 내가 잘 아는 분도 그렇게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따라 하는 거야."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동료의 뜨악한 표정을 보는 순간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초에 그의 말을 의심 없이 믿고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지 않았음이 문득 떠올랐다.


컴컴한 복도를 지나 어둑한 방으로 들어갔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사면이 흰 벽으로 이뤄진 방의 가장자리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검은색 계단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고 그 위에 초록색의 화면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치 제단에 모셔진 성화 같았다. 저 초록색이 무얼 의미할까, 어떤 느낌을 전해주려는 것일까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해설사가 설명을 하다가 스크린 안으로 쓱 들어갔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순간 자그맣게 탄성을 터뜨렸다. 스크린이 이차원의 평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삼차원의 공간이었다니! 그를 따라 스크린 너머 초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또 한 번 놀랐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경계가 모호하고 희미한 빛으로 가득한 공간. 해가 진 후 노을의 후광. 은은하고 따스한 그 빛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텅 빈 그곳은 경계가 없는 듯 느껴졌다. 나는 마치 구름 위나 천국, 혹은 사후의 세계로 들어간 듯 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잠시 머문 후 다시 되돌아 나오려 했을 때 관객들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원래 있었던 그 흰 방이 분홍색으로 보였던 것이다. 탄성을 내뱉는 사람들에게 해설사는 시각의 잔상효과 때문이라 했다. 초록의 공간에 오래 있다 보니 흰 공간이 분홍빛으로 보였던 것이다. 환시 또는 심리적으로 변형된 지각경험을 유도하는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간츠펠트>를 경험했을 때의 일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메츠거가 처음 발표한 <간츠펠트 효과>라는 용어는 감각 자극이 균일하거나 완전히 차단되면 인간의 뇌는 거짓 신호를 만들어 내는데 그럴 때 느끼는 경험, 즉 환각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시각 또는 청각 등 감각 기관이 기능을 멈추거나 쇠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 한다.


어릴 적 밤에 불을 끄고 옆에 누운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섬뜩한 괴물로 보여 얼굴을 서로 밀치던 기억,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무엇이 보이는지 서로 도란거리던 추억, 열감기로 결석을 하고 방에 누웠을 때 꽃무늬 벽지가 사자로 보이다가 강아지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는 환시 현상이다. 세상을 분별하는 도구인 감각, 감각을 통해 해석하는 두뇌는 사실 이처럼 착각에 빠지고 망상에 젖어드는 것이기에 취약한 면을 지닌다. 내가 진실이라 믿고 확신하는 것이 틀릴 수 있으며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삶의 실마리가 넌지시 전해주는 것이다. 오만한 자는 무시하지만 겸손한 자는 유념한다.


시저는 폼페이우스와 전투에서 브루투스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 적의 편에서 싸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투에서 승리한 시저는 그를 사면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와 시저는 오랜 연인관계였기 때문이다. 시저는 브루투스를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믿었다. 이후 그를 키프로스의 총독에 앉혔다가 로마 최고의 사법관인 법무관에 임명하였으며 후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하지만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로원 세력과 함께 단도로 시저를 찔렀다. 저항하던 시저가 브루투스의 칼을 맞자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외치며 쓰러졌다는 역사적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는 왜 사랑하고 믿었던 브루투스에게 배신을 당했을까? 연인의 아들,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집착과 맹신이 이성적 판단과 냉정한 시각을 눈멀게 했을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 사람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를 일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속단하거나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과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이자 착각이며 참혹한 비극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해."라며 시작하는 사적인 비밀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 믿고 신뢰하던 바로 그 사람에 의해 널리 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신뢰의 역설’이라고 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종종 착각 내지 환각이라는 살얼음을 디디는 일이다. 인간은 의외로 허술하며 사회 관계망은 비밀을 간직하고 지켜주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식물에 주는 것이 옳은지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보니 예상과 달리 틀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커피가 토양을 산성화 하고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커피 용액이나 찌꺼기를 희석시키고 발효해서 활용한다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남은 커피를 식물화분에 그냥 주는 것은 해롭대요. 날 따라 하면 안 됩니다. “ 진위 여부를 확인한 내가 옆 동료에게 정정해서 말했다. 쉽게 믿는 신용과잉 때문인지, 혹은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 때문인지 아니면 귀차니즘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사람과 정보와 이야기를 쉽게 믿고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이 같은 실수나 경험들을 크건 작건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스페인에서는 1,003명 등등 총 2,065명에 달하는 여성편력의 소유자 ‘돈 조반니’가 결혼을 앞둔 순진한 시골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며 부르는 2중창 ‘우리 손을 잡고’는 단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자석같이 강렬한 흡인력의 매력을 소유한 돈 조반니, 그 욕망의 화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를리나. 사랑과 유혹, 신뢰와 배신이 뒤섞여서 혼재하는 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속 그 이중창은 아름다워서 더욱 애잔하다. 속이고 속는 우리네 관계 같아서.


처음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었을 때 이교도가 즐기는 악마의 음료라는 논란으로 찬반 여론이 뜨거웠다.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직접 나섰다. 시음을 한 후 ”사탄의 음료라 하기에 너무 맛있다"며 커피에 공식적인 세례를 내리자 유럽사회에 급속히 퍼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130여 년 후 바흐가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다. 커피 중독에 빠진 딸에게 커피를 그만 마시라며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딸. 아버지에게 딸이 노래한다. ‘아!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 맛인가, 천 번의 키스보다 더 사랑스럽고, 머스캣 와인보다 더 순하네!’


쓴 커피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전문 바리스타들은 신맛, 쓴맛, 단맛, 향미 및 바디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섯 가지나 읽어내다니 사람의 감각이 얼마나 미세한지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다섯 가지밖에 느낄 수 없다는 것을 통해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의미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정한 커피 애호가라면 바리스타의 냉철하고 비판적 자세 그리고 오롯이 커피맛에 빠져드는 여유, 그 둘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삶을 대할 때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삶을 즐기는 다섯 가지는 무얼까? 격랑과 부침에 일희일비하는 소인배는 잠시 눈을 감는다.


돈 조반니의 욕망과 유혹, 채를리나의 사랑과 미혹의 노래가 흐른다. 악마의 독과 천사의 달콤함이 깃든 커피를 마시며 갈색으로 물드는 정원을 바라보노라니 다섯 가지가 뒤섞인 오묘하면서 알 수 없는 깊은 맛이 진하다. 인간의 욕망, 세월의 야속함과 삶의 현혹, 어지러운 미망, 그리고 국화꽃잎 같은 사랑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는 늦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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