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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오갔던 하와이 신혼여행

by omoiyaru

2025년 4월.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다.


우리는 부부관계임을 모두의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서하며,
유부녀 유부남의 길로 들어섰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주변 지인들을 챙기고, 집계약을 하고, 또, 신혼가전가구를 보러 다니고, 그렇게 2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조금씩 주변정리가 되다 보니 주변 지인들과의 약속도 하나둘 생기고 있는데 대부분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많이 물어왔다. 나는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다녀왔는데 허니문 베이비를 꿈꾸기는커녕 여러 번의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왔다.


그 이야기를 조금 기록해보려고 한다.


먼저 나는 결혼식을 마친 당일에 하와이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20대의 체력을 생각하고 진행했던 스케줄인데 결론적으로 내 몸은 이미 30대였다. 1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처음으로 비행기 내에서 토를 했다... 어릴 때 차멀미는 있는 편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차에서 토를 했던 적은 거의 전무한데 비행기에서 토를 했다. 비행기에서도 토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20대에 나는 해외여행으로 유럽, 미국, 아시아권을 20여 번 다닌 적 있고 비행기에서 멀미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도대체 내가 얼마나 체력이 안 좋아졌길래 이렇게 토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와이에 도착해서도 주로 10여 명이 탑승하는 승합차에 탄 채로 계속해서 이동을 하였다. 여기서 2차 멀미가 발생했다. 꾸역꾸역 호텔에 도착해서 바람을 쐬고 땅을 밟으니 좀 진정이 되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5일 차쯤 계획되어 있던 '거북이 스노클링'이었다.


거북이 보려다 저세상 갈 뻔했다.


파도가 거칠어서 4일 차로 예약되어 있던 일정이 5일 차로 바뀔 때부터 싸함을 감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거북이를 안 보고 가는 것도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거북이뿐만 아니라 하와이의 멋진 선셋까지 감상할 수 있는 요트투어였다.


바다로 나갈 때 생각보다 배가 멀리 나가서 조금씩 두려움이 찼다. 바닷물이 생각보다 차기도 했고 배가 생각보다 작아서 그랬는지 스노클링을 하고 올라온 이후부터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지면서 멀미가 시작되었다. 약 2~30명의 탑승객들 중 4~5명 정도가 뱃멀미를 했는데, 그중에 단연 원탑은 나였다.


나는 요트투어에서 50%의 에너지는 거북이를 보는 데 사용했고, 나머지 30%는 토를 하는 데 사용했고, 게워낼 것도 없을 만큼 다 토를 한 뒤 남은 체력 20%는 바닥에 누워서 사용했다..


이때 죽음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감지한 것이 내 온몸에 남아있던 모든 내용물이 다 밖으로 빠져나오는 유래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위로는 토를 했고, 아래로는 화장실에서 소변, 대변할 것 없이 배출했다. 체력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몸에 남아있는 모든 내용물이 배출되는 상황에 얼굴을 창백해졌고 남은 체력도 바닥이 났다. 나는 죽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겨우 땅을 밟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이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나서야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토를 워낙 많이 해서 2일 정도는 계속해서 쓴맛이 느껴지고 위가 아팠다.

한국에서 파는 '따듯한 죽'이 너무 생각났던 여행이었다.


결론적으로 신혼여행은 나에게 낭만이 아닌, 앞으로 닥칠 삶의 맛보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정말이나 현실적이고 다이내믹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을 꼽자면, 이번 여행을 통해 남편이 나의 저질체력을 직관함으로써 내가 그동안 말해왔던 '체력적인 한계' 부분을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남편은 잘 이해를 못 했다. 타고나기를 워낙 체력이 좋은 사람이다 보니 본인이 체력이 괜찮고 내가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면 괜찮나 보다 하고 넘기던 사람인데 직접 눈앞에서 본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다 죽어가고 있는 나약한 생명체를 보니, '사람이 저렇게 약할 수도 있구나' 하며 나와는 반대급부로 내심 놀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신혼여행 후기를 물어오면, 짧고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얘들아, 한국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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