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회사와의 질긴 인연을 드디어 정리하기로 했다.
퇴사를 생각했던 것은 사실 4~5년 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보수적이고 딱딱한 조직분위기와 부서,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디듯 버텨왔다. 중간중간 업무에 있어서 성과를 내기도 했고, 즐겁게 일한 적도 있지만 조금 더 많은 부분이 고통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퇴사를 바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금전적인 이유가 컸다.
현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타 회사보다는 높은 편이었기에 여기에서 어느 정도의 시드머니, 목돈을 마련하고 퇴사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정도의 금액을 채우고 또 결혼이라는 큰일까지 치루 고나서야 나는 드디어 퇴사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장기간 맞지 않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성과를 내는 것이 힘들고 무리한 요구로 느껴지기만 하고 일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요구만 해오고 할 일만 던져주는 사람들 속에서 괴로움을 느꼈다. 사기업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서로 경쟁하기 급급했다.
그런 조직 생태계가 나와 맞지 않았다. 누군들 맞겠냐만은 남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나와의 싸움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에는 유독 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이 살기 위해 남을 짓밟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혐오감과 회의감도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사람에게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이, 계속해서 맞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나는 점점 메말라갔다.
의지도 욕구도 열정도 사라져 가며 꺼져가는 불씨와 같은 상태였다. 늘 무기력하고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무리 많은 보수를 주더라도 나는 행복해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퇴사를 말하면서 일말의 미련이 없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나가는 거예요.
아무래도 나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지 못하는 팔자인 것 같다. 온실이 그저 따스하기만 한 온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려나. 이제 드디어 햇빛을 쬐러 나가는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빗물도 맞고 햇빛도 쬐고 싶다.
7월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퇴사를 말한 뒤, 남아있는 시간이 이제 2주 정도이다.
그 사이 예상치도 못하게 '임신'이라는 큰 선물도 함께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선물'이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임신이라는 이것이 또 내 인생을 어떻게 흘러가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혼자 살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 같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도 참으로 신비로워서 별도의 글을 작성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