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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했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졌다

by omoiyaru
싫어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던 나에게



퇴사를 이야기하고 회사에서의 업무들을 정리해 나가며 홀가분한 감정을 받고 있다.

늘 내 어깨를 짓누르던 알 수 없는 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퇴사를 2주가량 앞두고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퇴사를 처음 말했던 1달 전쯤에는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미팅을 하면서 오히려 평상시 업무를 할 때보다 정신이 없고 바빴던 것 같다. 놓치는 것이 없는지 꼼꼼히 챙기느라 압박감이 있었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나서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좋아했던 음식, 노래, 옷 스타일 등 과거의 내 모습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정말 좋은 신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자이언티' 노래를 듣고, '역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참 즐겨 들었던, 좋아하던 노래 스타일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밤거리를 걷고 뛰는 것을 좋아했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회사생활과 결혼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지난 1년간은 좋아하던 노래도 드라마도 영화도 책도 끌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여유롭게 감상하고 즐기려면 심적 여유라는 것도 필요한 영역인 것 같다. 먹고살기 급급할 때에는 '현실'만 있을 뿐 '낭만'이랄 건 없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그저 내가 취향이 바뀌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개미처럼 하루하루 살아갔다. 삶의 의미를 잃어가며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하며 재미없는 나의 일상에서 도망쳐 자극적인 유튜브 쇼츠 속에서 흘러가듯 살았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었다. 점점 나의 취향이나 개성은 사라지고 남들의 의견과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삶을 살았다.


이번 변화는 퇴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배속에 아이를 품은 것도 꽤나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아기는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려 하는 듯, 인공적인 맛과 향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평소 좋아하던 자극적인 음식도 한 입만 먹으면 질려버린다. 처음에는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아빠를 닮아 까다로운 아이가 생겼구나'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가 몸에 안 좋은 음식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이게 먹고 싶고 어느 날은 저게 먹고 싶고 어쩌다 둘 다 먹고 싶어지는 날에는 둘 다 시켜버리고 남긴 음식을 버리면서 입덧을 핑계로 돈낭비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중에서 파는 음식들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던 공허한 뱃속이 엄마의 정성 담긴 사골국과 어려서부터 먹어온 반찬들을 먹으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늘 어른스러웠던 나는 임신 덕분에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엄마라는 존재의 소중함도 어렴풋 깨닫게 된 것 같다.


아직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아이는, 값싼 음식으로 적당히 한 끼를 때우던 나에게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는 법을 알려주고, 내 몸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아끼듯 살았을 나에게 아이는 조금 더 좋은 것을 챙겨 먹어도 괜찮다는 큰 가르침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여러 가지의 일들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지고 운동을 하고 싶어지고 노래를 듣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환하게 웃고 싶어졌다.


나는 나를 쓸모없다고 대하던 사람과 무리와 조직에서 과감히 떠나 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떠날 예정이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나가며 풍성한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퇴사가 두렵지가 않다. 오히려 퇴사가 홀가분한 이유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은 최고의 선택 또는 잘한 선택이 되지만,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도 나와 잘 맞지 않는다면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의 최고가 나에게는 최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이 회사에서 뼈저리게 배우고 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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