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지 7주 차를 넘어섰다. 6주 차부터 입덧 증상이 시작되었다.
입덧의 증세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계속해서 뱃멀미, 차멀미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멀미는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과 더불어 두통을 가지고 왔다.
소화능력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다운된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있을 때에는 숨이 찬 느낌이 든다.
피로감이 심하고, 몸에 열이 많아진다.
이 중에서도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멀미를 하는 듯한 느낌과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속을 게워낸 후 지속되는 속 쓰림이 계속해서 지속되는듯한 느낌이다. 속이 쓰리거나 체를 한 것 같다고 해서 함부로 약을 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이상한 느낌을 계속 견뎌야만 한다.
토를 할 정도로 입덧증세가 심해질 경우, 입덧약을 먹으려고 처방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견딜만한 수준이라 생각하여 최대한 먹지 않고 견디고 있다.
처음 입덧 증세가 시작되고 이것을 잠재우기 위해서 끌렸던 음식은 뜨끈한 국물류였다. 남성 어른들이 해장을 왜 뜨끈한 국물로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국물류 음식 중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는 깔끔한 국물만이 선호되었다. 처음에는 '갈비탕'을 자주 사 먹었다.
그러다 갈비탕도 느끼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냉면도 먹어보고 냉국수도 먹어보았는데 차가운 음식을 입덧증세를 완화시켜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먹고 싶은 음식이 사라졌다.
억지로 먹는 음식들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계속해서 얹히는 느낌이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다 문득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음식이 있었다.
그건 바로 어릴 적 엄마가 해주었던, 사골국
어릴 적 엄마는 푹 끓인 뽀얗고 하얀 사골국을 많이 해줬는데, 내 최애 음식 중 하나일 정도로 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었다. 그때 엄마가 같이 해준 오이지무침과 볶음김치도 별미였다. 갑자기 그 음식들이 너무 생각났다. 밖에서 비슷한 음식을 사 먹어 봤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아 허기짐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사골국을 해줄 수 있는지 부탁하자, 엄마는 반갑게 바로 주말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주말에 집에 가자 내가 원하던 반찬과 사골국이 푹 끓여져 있었다. 나는 밥을 그 자리에서 2그릇이나 비웠다. 그동안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엄마, 너무 맛있다. 진짜 너무 맛있어.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맛있어? 많이 먹고 가."
"어, 진짜 비싼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어. 속도 편하고 너무 좋다. 드디어 밥 먹은 기분이야. 고마워 엄마."
엄마와 나는 성향이 달라 어릴 적부터 많은 다툼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살가운 모녀관계가 아니었다.
표현이 서툴고 투박한 엄마와 섬세하고 예민한 나는 잘 맞지 않은 관계였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 엄마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 또한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하고 또 어떻게 아이를 키워냈을까 대단하다는 존경의 마음이 생기며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엄마의 손맛이 없었다면 나는 힘든 입덧기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엄마, 친정엄마가 없었으면 애 갖고 진짜 서러웠겠다.
이래서 다들 애 키울 때는 친정엄마가 중요하다 하는 거구나 이해가 간다.
본가에 있는 동안 맛있는 음식 무엇보다도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편히 쉬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다 사랑이었구나.'
엄마에게 많은 것들을 바라고 실망하고 다그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맛있다고 말해줘서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엄마 예전에 저 냄비에다가 해줬던 카레 있잖아. 그게 계속 생각난다?
그거 진짜 안 질리고 맛있었는데
그렇게 엄마는 다음 주말에 카레 한솥을 해서 보내줬다. 엄마가 해주던 나물들을 잔뜩 넣은 비빔밥이 먹고 싶다던 말도 기억하여 나물반찬도 잔뜩 보내주셨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에게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그리고 정성과 사랑이 담긴 '엄마밥'이 최고의 보약인 듯싶다. 그렇게 심하던 입덧 증세도 엄마밥을 먹으며 많이 줄어들었다. 입덧증세 때문에 단것을 계속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단것도 크게 당기지가 않고, 계속해서 소화가 되지 않아 복부가 빵빵한 느낌이 들던 복부팽만감도 줄었다.
엄마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내가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든다 한들 그 맛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엄마가 건강히 계셔주시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