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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을까

by omoiyaru

20대의 꿈 많던 소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에게 큰 꿈은 없다.

그저 적당히 밥벌이를 하면서, 아픈 곳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게 꿈이라면 꿈이랄까?


좋아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들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던 해외여행도 이제는 1년에 한 번씩 수행해야 할 수행과목처럼 느껴진다.

요즘의 소망은 그저 내가 투자해 놓은 자산들이 나의 노후를 편안하게 해 주길 바라는 것쯤인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 재미가 사라진 요즘의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주어진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인간에게는 같은 시간이 주어지는데 난 그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 이러한 내가 요즘 그나마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집 앞에 나타난 아기 길고양이의 안부를 챙기는 일이다.


태어난 지 4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 고양이가 엄마를 잃은 모양인지 혼자 밥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한 뒤, 나의 반려고양이의 예전 모습이 떠올라 밥과 물을 조금씩 챙겨주고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이웃주민들은 이미 1~2달 전부터 아기 고양이를 목격해서 밥을 주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은 사냥능력도 없는 너무 작은 고양이는 그렇게 사람들이 주는 밥에 의존한 채 밥자리 인근에 정착한 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아기 고양이의 시간도 그곳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최근에 점점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기 고양이의 생사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의 고양이 알레르기와 임신 중인 나의 상태를 감안하여 아기 고양이를 입양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걱정이 되는 마음만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에 매번 마음이 아팠지만, 밥을 주는 것으로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길 위의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은 야생이라는 터전 속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아기 고양이를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 나 역시도 그 야생이라는 터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생명체에 불과하기에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으면서도 나의 마음은 계속해서 나약함에 머물러 있었다.


그저 지금은 아기 고양이의 밥과 물을 챙겨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밥을 주다 오늘 새로운 고양이를 목격하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하얀색에 6-7개월은 되어 보이는 조금은 큰 크기의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엄마인가? 하는 생각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두 고양이가 다투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고양이는 튕겨져 나오듯 잠깐 밖으로 나왔다 다시 아기 고양이의 밥자리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하얀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를 위해 사람들이 주는 밥그릇의 위치를 알고 온 것 같았다. 그 밥자리를 빼앗기 위해 온 것 같았는데 아기 고양이는 아마 덩치면에서나 기세면에서 그 하얀 고양이를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을 붙잡았다. 아기 고양이가 도망친다면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 했는데 두 고양이는 모두 수풀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기 고양이의 밥자리로 다시 향했다. 밥그릇의 밥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고 하얀 고양이도 아기 고양이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원래 아기 고양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까, 추운 겨울철 날씨에 얼어 죽지는 않을까, 혹시나 다른 동물에게 물려 죽지는 않을까를 걱정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같은 고양이에게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고양이의 편도 들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챙겨주던 아기 고양이의 생사가 더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밥그릇을 뒤편으로 가져와 아기 고양이를 위한 밥을 채워 넣어주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수풀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심히 살펴보니 아기 고양이가 보였다. 원래 아기 고양이의 밥자리는 앞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하얀 고양이를 피해 뒤편 공간에 숨은 것 같았다.


나는 아기 고양이 앞에 밥을 주고 한동안 먼발치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얀 고양이가 와서 밥을 빼앗아 먹거나 괴롭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적어도 내가 있던 10여 분간은 하얀 고양이가 오지 않았지만, 이미 밥자리가 노출된 상태에서 앞으로 하얀 고양이 또는 다른 고양이의 공격이 계속될 수 있음이 인지되고 나니 아기 고양이에 대한 걱정이 다시 커져만 간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려보기도 했지만, 포획도 되지 않은 야생의 아기 길고양이를 입양한다는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학대하는 사람에게 위치가 노출될까 봐 걱정이 되어 자세한 내용을 작성하지 못했다.


혼자 살기로 결심했던 때였다면 진지하게 입양을 고민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슬프기도 하고, 그냥 이러한 현실이 세상살이인 것 같아서 모든 것들에 마음이 아팠다. 야생이라는 곳에서 부모, 가족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이 있다는 것과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야생의 아기 길고양이를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지금 임신 중이라 감정선이 더 롤러코스터처럼 변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저런 생각들과 오늘도 춥고 배고픈 환경 속에서 편히 잠들지 못할 아기 고양이의 안위가 신경 쓰여 입맛까지 떨어진 상태이다.


남편의 출장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생각만 많아진다. 모두가 같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왜 각자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과연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하는 철학적인 질문들과 과도한 생각들에 잠겨 오늘도 잠 못 이루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정신 차리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울수록 우리 집 고양이와 노는 시간을 늘리고 우리 집 고양이에게 더 애정을 주려고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생각들에 사로잡히고 마는 내가 있다.

마냥 마음으로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역할과 임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그것을 유지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바로 서지 못한 채 그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욕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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